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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전통 사찰 이야기 (7) 밀양 표충사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사명대사 호국성지

  • 기사입력 : 2013-04-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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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봉선사의 자연석 사리탑.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에 위치한 표충사는 재약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영각(왼쪽부터), 응진전, 팔상전, 대광전을 차례로 볼 수 있다.
    왕자의 병을 낫게 했다는 영정약수.
    대광전에서 신자들이 합장하고 있다.


    위세를 떨치던 벚꽃도 떨어지고 개나리꽃이 한창인 4월 중순, 밀양 재약산과 천황산 산행할 때에 지나쳐 가던 표충사를 작심하고 찾았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해 준 일행은 표충사에 적을 둔 이종희, 김대현 포교사(법사)와 밀양시 소속 문화관광해설사 박정희 씨. 이들과 함께 사명대사 호국성지(護國聖地) 표충사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표충사는 크게 서원과 사당이 있는 유교적 공간과 사찰 건물로 구성된 불교적 공간으로 나뉜다. 유교적 공간은 매표소와 주차장을 지나 정문에 해당하는 수충루와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진영이 봉안된 표충사당, 3대사의 위패가 봉안된 표충서당,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물이 소장된 유물관, 설법전 등으로 이뤄져 있다. 불교적 공간은 절의 중심 건물인 대광전(대웅전)을 비롯해 팔상전 관음전 명부전 범종각 등 전통적인 사찰 건물로 구성돼 있다.

    법사 두 분은 표충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첫째 사찰 경내에 사당과 서원 등 유교적 건물이 있어 유불이 공존하는 가람 구조, 둘째 흥덕왕의 셋째 왕자의 나병을 고치게 해 준 유명한 영정약수가 있으며, 셋째 대한불교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선사의 사리탑이 있으며 이 사리탑은 다른 탑과 달리 자연석이라는 점을 들었다.

    절에 들어서면 풍수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참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절 앞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개울이 흐르고 절 뒤로는 모양이 각양각색인 여러 산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해설사는 “절이 위치한 곳이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인데, 구천리란 필봉 사자봉 수미봉 관음봉 미륵봉 향로봉 등 1000m를 넘나드는 8개 봉우리로부터 9개의 개울(川)이 흐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일주문에 이어 두 번째 관문이지만 사실상 사찰 대문에 해당하는 수충루. 여기서부터 표충사당이 시작된다. 누각 중앙 상단에 표충사(表忠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수충루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2층으로 된 누각식 건물이어서 이채롭다. 이는 향교나 서원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유교식 사당의 흔적이다.

    수충루를 지나면 정면에 사명대사 유물관을 비롯해 왼쪽 표충사당 표충서원 설법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 이름인 표충사(表忠寺)와 달리 ‘사당 사(祠)’자를 쓴 표충사(表忠祠)라는 편액이 걸린 표충사당. 내부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진영이 보관돼 있다. 신라 무열왕 원년인 654년 ‘죽림정사’에서 시작된 절 이름이 오늘날 표충사(1839)로 불리게 된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밀양 무안면 영축산 백하암에 모셨던 표충사당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다.

    “며칠 전 여기서 불교 의식과 유교 의식의 전통제향 의식으로 세 분의 호국성사를 모시는 추모제를 지냈다. 매년 봄 가을(음력 3, 9월)에 제사를 지낸다.” (포교사)

    절 이름과 관련된 또 하나의 명물 영정약수(靈井藥水).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피부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면선사의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면선사가 말하기를 “이곳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왕은 그 말에 감탄해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절 이름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취재진도 약과 같다는 영정약수 맛을 보았는데 물맛이 좋았다.

    충(忠)을 드러낸(表) 절 표충사(表忠寺).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큰 활약을 펼쳤던 사명대사의 충정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절이다. 이런 특징은 사명대사와 관련된 79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는 유물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유물 중에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 37년)에 사명대사가 강화 사절로 일본에 갈 때 조선포로의 송환문제를 다툰 문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비명을 새긴 목판, 서산대사의 사적을 새긴 목판, 불경 등이 포함돼 있다.

    사천왕문부터 시작되는 불교 영역.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눠 그린 팔상도를 모신 팔상전. 아미타후불탱과 함께 표충사를 빛낸 역대 조사스님들과 중창주들의 영정이 봉안돼 있는 영각, 효봉스님이 말년에 머무르다 열반한 만일루.

    만일루는 무량수각 또는 서래각이라고도 불린다. 조선 철종 11년(1860)에 월암선사가 세운 만일루는 H자형의 독특한 구조로 아미타불의 48원을 상징하는 48칸과,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평으로 되어 안쪽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한동안 참선하는 선방으로 사용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대종사가 만년을 보낸 곳이다.

    부처님이 설법을 할 때 하늘에서 꽃이 비오듯 떨어졌다고 해서 이름 붙은, 부처님 설법장소인 우화루(雨花樓). 대광전을 바라보며 마주해 자리 잡고 있었다. 우화루에는 사명대사 영정이 여러 장 걸려 있는데 모두 모습이 다르다. “의병장으로 수염이 있는 스님이 사명대사 영정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우화루는 야외참선 장소로 쓰인 곳이며, 우화루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남계천 맑은 계곡물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절 바깥에 있는 효봉선사 사리탑. ‘엿장수 중’, ‘판사 중’, ‘너나 잘해라 스님’ 등 여러 수식어가 붙은 효봉스님(曉峰, 1888~1966)은 대한불교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했다. 일제시대 판사를 하다 38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하고 한번 앉으면 일어날 줄 모르는 남다른 수행 때문에 ‘절구통수좌’라는 별명으로 말년에 표충사에서 머물렀으며, 효봉스님이 공부하고 열반한 곳이 표충사 서래각 선원이다.

    효봉스님 사리탑은 다른 절과 달리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사리탑 앞에는 ‘두드리지 마세요’라는 푯말이 있다. 이유를 물으니 목탁소리가 난다는 소문 때문에 방문객들이 하도 두드려 사리탑이 훼손됐기 때문이란다. 자세히 보니 바위 곳곳에 돌멩이로 두드린 자국들이 하얗게 남아 있다. 그 설명을 들으니 정말 소리가 나는지 궁금해졌다.

    글= 이상규 기자

    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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