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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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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선물- 박미자(시인)

  • 기사입력 : 2013-04-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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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증맞은 화분이 집 앞에 놓여 있었다. 통통한 줄기와 잎이 빼곡한 자그마한 도자기 화분이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화분 표면에 깨알 같은 글씨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제야 짚이는 데가 있어 휴대폰을 열었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수업하느라 전화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 이 아이였구나.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그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은 7년이었다. 화분을 놓고 간 아이는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한 달에 지정된 책 외에도 우리 집에 있는 책을 빌려가서 읽었다. 공부보다는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한보따리 가져와 풀어놓기를 좋아했다. 학교에서 속상했던 일, 엄마에 대한 불만 등 소소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었다.

    긴장된 학교생활에 조금이나마 정서적인 면을 부여하고 싶어 방학을 하면 수업 후 30분 정도 시조 특강을 하곤 했다. 시제를 내고 써 보도록 하기도 하고 다 쓰지 못하면 숙제를 내기도 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숙제를 잘해 왔는데, 칭찬을 해 주면 신이 나서 더 열심이었다. 백일장에 나가서도 입상하면 꼭 선생님 덕분이라고 해 나를 흐뭇하게 했다.

    함께 수업했던 친구들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그만두었을 때에도 그 애는 혼자 수업을 했다. 몇 해가 지나고 예전의 아이들이 다시 배우러 왔을 때도 큰 동요 없이 자리를 지켰고,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우리 집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그 아이로 인해 나의 건조한 생활은 물기를 되찾을 때가 많았다.

    독서지도사란 미명 아래 많은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어떻게 하든지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애썼다. 책을 읽어 오지 않으면 수업을 하지 않고 돌려보내고, 글을 다 쓰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보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달았다.

    흔히 청소년기를 공에 비유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해 나를 긴장시켰다. 그러면 네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너를 이만큼 키우기 위해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며, 네가 만일 다른 선택을 한다면 네 부모님은 세상 살아갈 힘을 잃을 것이다. 너는 누가 뭐래도 너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이유는 없다며 아이를 다독였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프란츠 슈프랑거는 “교사는 학생의 영혼을 조각하는 사람이다”고 했다. 이 말을 새길 때마다 내 자신을 되돌아다보게 된다. 교사가 빚는 대로 모양이 나오는 찰흙 같은 존재인 아이들을 내가 잘 안내하고 있는지 숙연해진다. 가르침에 대한 회의가 들 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놓고 간 작은 화분에 새겨진 그 마음이다.

    “쌤! 사랑해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선생님의 사랑스런 7년(!!)제자 낭이예요.♡ 오늘이 스승의 날 겸 체육대회여서 왔는데 안 계셔서 화분만 놓고 가네요. ㅠㅠ

    저는 선생님께서 저를 가르쳐주신 그 7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잘못하면 삐뚤어질 수도 있던 시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쌤께서 잡아주셨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가 쌤 댁 앞에 이르는 동안에도 쌤께서는 어떤 어린 친구들을 잡아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 비록 공간이 적어서 제 생각을 많이 전달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제가 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건 변치 않아요. 사랑합니다. 낭이 올림”

    박미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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