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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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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83) 황강 31 합천군 용주면 용문정~대양면 정양늪

울창한 숲길, 아늑한 습지 걷는 즐거움

  • 기사입력 : 2013-05-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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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 있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정양늪 생태공원.
    황계폭포
    황계폭포 입구 자연정
    용문정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두 살 된 나는/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시인의 ‘오월의 신록’ 시이다. 온 산하가 연두색 물감을 칠한 듯 푸름이 가득하다. 천 시인의 오월의 신록처럼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코 걷기의 즐거움을 주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떠나는 여행은 아니다. 걷기를 통해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고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의미를 찾아내면 여행의 재미가 쏠쏠해진다. 이재현 시인도 ‘숨어있는 것을 볼 줄 알면 삶이 지겹지 않다’고 했다. 5월의 따뜻한 햇살 속으로 속도에 쫓기지 말고 걸어서 떠나보자. 행복은 걷기의 즐거움에서 시작된다.


    ◆용문정·영상테마파크

    합천 오도산 자연휴양림에서 지곡천을 따라오면 국도 24번 영서로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권빈 삼거리이고 제법 큰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김봉천을 건너 권빈계산길로 가면 자연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들판에는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여유로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권빈소류지를 지나 남계소류지를 뒤로하면 인덕산(해발 647m)이 반겨준다. 합천군 봉산면 권빈리에서 계산리로 이어지는 권빈계산로 계곡길을 마을 촌로들은 속칭 질골이라 하는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알려진 함양 오도재 축소판 같은 풍경이다. 합천 사진동우회에서 촬영하기 좋은 위치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아름다운 질골을 내려오면 합천호를 옆에 두고 가는 호젓한 호반길이 5월인데도 한가롭기만 했다. 합천호가 생기면서 고향마을이 수몰돼 망향의 탑과 정자가 요소요소에 세워져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노파마을이 있었던 부근에도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적은 노파동적비와 망향탑, 망향정이 있었다. 정자에는 마라톤 연습을 한다는 중년의 남자가 쉬고 있었다. 한적한 호반의 길을 달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번 이겨보고자 물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마라토너는 싱그러운 5월의 햇살 속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땀을 흘리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합천댐을 뒤로하고 황강을 따라 물 문화관과 합천댐 기념탑을 지나면 용문 계곡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변 울창한 나무숲 사이에 아담한 용문정이 자리 잡고 있다. 계곡 주변에는 자연 바위들이 강물이 불어나고 줄어들면 잠기기도 하고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용문정은 한은 류수정(1484~1534)이 기묘사화(1519)가 일어나자 대사헌 조광조 등의 신진 인사들이 화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이곳으로 내려와 정자를 지어 충청, 영호남 현인 문객들과 교류를 하며 산수를 즐겼다. 용문정 동쪽에는 신선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는 강선대가 있다.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사방이 트여 있고 계자난간을 달았다. 정자 주변은 돌담이 있고 배롱나무가 여름이면 화려하게 연분홍 꽃으로 장식을 한다. 정자 인근에 용문상회를 하는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

    황강을 따라 발길을 재촉해 3km쯤 가면 합천영상테마파크가 있다. 2004년도에 건립한 영상테마파크는 1920년대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국내 최고의 특화된 시대물 오픈세트장으로 드라마 <각시탈>, <빛과 그림자>, <서울1945>, <에덴의 동쪽>, <경성스캔들>, 영화 <써니>, <태극기 휘날리며>, 뮤직비디오 등 67편의 영화, 드라마가 촬영된 촬영세트장이다. 이곳에는 체험시설 5개소를 비롯해 40여 개의 세트시설이 있다. 출입구인 가호역에서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서면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시내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동화백화점과 반도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동화백화점은 1906년 일본 회사인 미스코시 백화점으로 서울 충무로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본점 자리에 세웠다. 미스코시 백화점은 1955년 동화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꿨고 1963년 11월 백화점 이름을 신세계로 바꿨다. 경교장 건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1899년 도입해 1968년까지 운행이 되고 이제는 없는 전차도 있었다.



    ◆황계폭포·정양늪 생태공원

    영상테마파크에서 발길을 재촉해 2km쯤 되는 황계폭포로 향했다. 황강을 따라 내려가니 수면이 잔잔한 합천호 조정지댐이 반겨준다. 조정지댐의 역할은 본 댐의 홍수 조절을 도와주고 본 댐에서 한꺼번에 흘려보낸 물을 담아뒀다가 하류로 용수 공급을 하는 동시에 발전도 하는 다목적 댐이다. 환경의 지표라고 하는 철새들의 낙원이 되기도 하면서 사진작가들의 발걸음도 자주 이어지는 곳이다. 합천읍내로 가는 합천호수로를 벗어나 용지1길을 따라 용주면 소재지를 지나면 황계폭포로 가는 길이다. 1026번 황계폭포로를 따라 한적한 시골길을 가다 보면 황계 마을인데 입구에 마을의 내력이 적혀 있었다. 황계폭포 600m라고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났다. 황계폭포를 흐르는 하천이 황계천인데 하천변 좁은 콘크리트 길을 따라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이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는 것이 훨씬 운치 있고 편리하다. 울창한 숲길을 벗어나면 길목에 자연정(紫煙亭)이 나타난다. ‘자연(紫煙)’은 ‘붉은 안개(내)’를 뜻하는 것이니, 정자 이름의 내력은 이백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의 첫 구절 ‘일조향로생자연(日照香爐生紫煙·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 일어나고)’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을 찾았던 선비들은 황계폭포를 즐겨 망여산 폭포에 비유했다고 한다. 자연정 바로 옆에는 황계폭포를 노래한 남명 조식 선생의 시비가 오석에 새겨져 있었다. 황계폭포는 허굴산 계곡을 돌고 돌아 2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떨어지며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흐른다. 주변의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폭포는 2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의 폭포는 12m의 절벽에서 곧장 떨어지는 폭포이고 아래쪽 폭포는 20m의 높이로 바위절벽을 타고 흐른다.

    폭포를 뒤로하고 황계천을 따라가다 황강을 만나 12km쯤 가면 정양늪 생태공원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고요한 모습으로 반겨줬다.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 있는 정양늪은 약 1만 년 전 후빙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나 황강의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물학적,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습지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황강의 수량과 수위 감소로 육지화되고 인위적인 매립으로 수질 악화가 가속되어 습지로서의 기능이 점점 상실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정양늪 생태공원 사업을 추진했다. 그 후 정양늪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어주는 생명의 터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나무데크와 황토흙길을 만들어 습지의 생태를 관찰하며 산책하도록 3.2km의 탐방로를 만들었다. 탐방 나무데크 주변 늪지에는 가시연, 수련, 어리연, 남개연, 왜개연, 물옥잠, 자라풀 등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계절 따라 고니, 흰뺨검둥오리, 기러기 등 수천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와 철새 개체수가 다량 증가해 철새 도래지로 자리매김했다. 담수량 증가 및 정체수역의 물을 순환하도록 해 수질을 개선함으로써 정양늪은 옛모습을 찾아 동식물에겐 소중한 서식지로, 탐방객들에겐 생태학습장으로 가치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아늑한 습지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식물의 정화 작용에 마음속 때까지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든다. 주차장에서 느리게 걸어 황토흙길을 따라 나무데크까지 늪을 한 바퀴 걷다 보면 행복한 걷기의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진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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