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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전통 사찰 이야기 (8) 창녕 관룡사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 자리한 신라 고찰

  • 기사입력 : 2013-05-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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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구룡산에 자리한 관룡사.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은 보물 제295호로 소원성취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관룡사에서 15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관룡사에서 바라본 용선대.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군립공원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에 자리한 관룡사(觀龍寺)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히던 유서 깊은 명찰로 알려져 있다. 1733년(영조 9)에 평해군수로 있던 신유한이 적은 관룡사 사적기(事蹟記·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3호)에 따르면 원효 스님과 그 제자인 송파 스님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던 중 화왕산 정상의 삼지(三池)에 아홉 마리 용이 깃들어 있다가 절이 창건될 때 구름 위로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에 ‘용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관룡사로 짓고 산 이름도 구룡산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시기는 신라 초기인 349년(흘해왕 40)으로 나와 있다. 349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527년보다 300년가량 앞선 때이므로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직접 가야에 전해졌다는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예증으로 들기도 한다.

    관룡사로 가는 오솔길 양쪽에 한 쌍의 석장승(경상남도민속문화재 제6호)이 서 있다. 절의 경계를 표시하고 수문장 구실을 한다. 왼쪽에 있는 남장승은 높이 220㎝ 둘레 70㎝의 크기로 상투를 얹은 듯한 둥근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다. 툭 튀어 나온 커다란 눈, 콧구멍이 뚫려있는 주량코가 특이하다. 콧잔등에는 두 개의 주름을 새겨 놓았고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 두 개가 아래로 뻗어 있다.

    오른쪽의 여장승은 높이 250㎝, 둘레 80㎝로 사다리꼴 모양의 받침돌 위에 구멍을 파서 세웠다. 상투 모양이 조각돼 있지만 남장승과는 달리 관모가 없다. 두 장승 모두 몸체에는 아무런 글귀가 없으며 육중한 몸매로 인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관룡사로 오르는 돌담길에 석문(石門)이 있다. 사실상 관룡사의 일주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너비 118㎝, 높이 210㎝의 조그마한 문이다. 석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사천왕문이 있다. 안에는 사천왕도를 모신 벽체가 남아있다.

    맨 처음 마주치는 것이 2층 누각인 원음각(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40호)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1634년(인조 12)에 초창된 후 1763년(영조 39)에 중건했다. 본래 사천왕문을 지나 사찰로 들어오는 누하식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원음각 동쪽에 있는 돌계단을 통해 진입하도록 동선이 변경돼 있다. 원음각 하부 역시 계단을 쌓아 옛 모습을 잃어 버렸다.

    사천왕문 왼쪽에는 범종루가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범종과 법고가 봉안돼 있다.

    앞마당으로 오르면 대웅전(보물 제212호)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 규모의 조선시대 후기 건물이다. 1965년 8월 해체보수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401년 창건돼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나 1617년(광해군 9)에 중창하고 1749년(영조 25)에 중수됐다. 수미단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목조 석가삼존상이 봉안돼 있다.

    대웅전 좌우로 칠성각과 명부전이 있으며, 칠성각 위로 산령각과 응진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요사 두 동이 있는데 서쪽 요사는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고 동쪽 요사는 승방이다.

    원음각 오른쪽에는 약사전(보물 제146호)이 있다.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1칸의 자그마한 건물로 조선 초기의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지붕이 기둥 간격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길어 가분수 형태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안정감이 느껴진다.

    약사전에 봉안된 석조 여래좌상(보물 제519호)은 절 서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용선대의 석조 여래좌상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불상이다. 약사전 앞에는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1호)이 있다.

    절 구경을 한 뒤 관룡사 서쪽 봉우리인 용선대(龍船臺)로 향한다. 관룡사에서 용선대 석불까지는 700m, 15분 거리다. 숨이 턱밑까지 차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눈앞에 집채만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용선대다. 사바와 극락 사이의 번뇌의 세상을 용이 이끄는 배를 타고 건넌다는 ‘반야용선(般若龍船)’에서 따왔다.

    팔공산 갓바위처럼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는 소원성취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찾는 이들이 많다.

    편평한 바위 위에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이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단아한 인상이며 미소를 띤 표정에서는 자비로운 불심이 느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처리돼 도식적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약간 위축된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 도식적인 옷주름선, 8각 연꽃무늬 대좌의 형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선대 불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관룡사 정상 쪽으로 20여m 위쪽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야 한다. 산 아래 옥천계곡과 올망졸망한 능선을 법당 삼아 사바세계를 지켜보는 부처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룡산 병풍바위 아래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관룡사, 화왕산 자락, 옥천계곡 등 시원스레 펼쳐진 주변 경치가 마음속 번뇌를 씻어주는 듯하다.

    글=양영석 기자·사진=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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