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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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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무도 놀라지 않는 일에 대하여- 박서영(시인)

  • 기사입력 : 2013-05-1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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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비전을 켜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듯한 소식뿐이다. 우리나라에 언제 이렇게 뉴스채널이 많아졌을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쏟아져 나왔을까. 하나의 논쟁거리가 터질 때마다 전문가들이 출연해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텔레비전은 끝없이 세상의 고통과 불안을 앞세워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사소한 사건들에서 감동을 받고 가슴이 뛰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수많은 채널에서 보여주는 세계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며 떠들어댄다.

    너무 많은 정보와 사건사고가 터지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둔감해진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소식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놓기 어렵다.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텔레비전 속의 영상들은 낯설다. 매우 아름답거나 매우 참혹하거나 매우 환상적인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라는 블랑시의 대사처럼 현재 ‘욕망’의 전차 위에서 아우성이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도 시와 음악 같은 예술은 부드러운 광채를 갖고 있는 소중한 것으로 표현돼 있다. 세상의 한복판으로 나가서 의자를 집어던지지도 못하고, 밀실에서 야합을 하지도 못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들은 자신만의 방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희미하지만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반짝거린다. 그것이 예술이다.

    예술가 역시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온몸의 세포가 열려있는 자들이 예술가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더 예민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다. 세상의 일들에 대해 둔감할 수 없는 유전자의 소유자들. 가령 어떤 이가 강물에 뛰어들었다는 것과, 공원에서 죽은 아이가 발견되었다는 것과, 밤의 공원에서 소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일은 며칠만 지나면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는데 예술가는 그런 일들을 쉽게 잊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은 세상을 향해 가슴이 열려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더 사소한 것. 국도에서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길바닥에 바싹 말라붙어버린 비둘기의 시체 따위들은 또 어떤가. 시인들은 그 사소한 것들을 들여다보고 사유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참으로 비생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 있는 것보다 이름 없는 것들을 사랑하며, 스스로 가난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상한 족속들이 시인이다.

    그러니 행정에는 눈먼 장님이 될 수밖에 없다. 장례식에 가서 펑펑 울 순 있지만, 서류를 앞에 두고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은신처는 없다. 잊어지거나 버려지거나 아니면 그들의 세상에 나가 나비처럼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나비날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을 띠어야 하고, 예술가는 어떤 모습으로든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비밀을 많이 가질수록 풍요로워진다. 블랑시의 대사처럼 ‘한 시간이 그냥 한 시간이 아니라 마치 영원의 작은 조각이 손에 쥐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스쳐간 인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소한 생각들을 하다니.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너무 사소한 고민들을 말이다.

    그런데 이 ‘소용없음’의 ‘소용 있음’이 예술가의 책무이다. 누군가 일생동안 다 못쓰고 죽을 황금을 모으는 동안 예술가는 사랑의 환상을 좇아 방랑하며 헤매 다닌다. 때때로 시를 쓰는 일이 누군가에게 미안하다. 마음의 얼룩이 번져 거미처럼 바람처럼 오월의 세상으로 나간다. 이 밤에 어디를 헤매 다니려고 집을 나가는 것일까. 전쟁의 불안과 소비사회의 욕망들이 텔레비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예술의 희미한 별이 더 반짝거리기를 기대해 본다.

    박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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