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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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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완전 뿔난다! 뒤통수치는 이웃- 정희숙(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3-05-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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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집에 외톨이 또래가 있었다. 같이 놀아주려고 값비싼 내 게임기 가져가 설치를 했다. 세뱃돈과 용돈, 심부름값에 동생 돌반지값까지 보태서 산 게임기다. 그런데 느닷없이 괜한 생트집을 잡더니 자기네 집이라며 그냥 나가란다. 배은망덕도 유분수다. 괘씸하다. 멀쩡한 게임기 두고 얼떨결에 빈손으로 내쫓겼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참 어이없고 기가 찬다. 친구들과 따지러 갔더니 문도 안 열어준다. 잘못하면 들어가서 못 나올 수도 있단다. 그러면 더 큰일이다. 싸움 싫어하는 내 약점을 알고 그런다. 유치하고 치사하다. 요즘 세상에도 저런 아이가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원칙과 믿음, 약속도 통하지 않는 아이란다. 예전에도 몇번 당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안 그럴 줄 알았던 게 착각이었다. 막무가내, 안하무인이라며 말릴 때 귀담아듣지 않았던 게 잘못이다. 그렇다고 싸우면 같은 사람 된다. 자꾸만 게임기가 눈에 어룽거린다. 밤잠이 안 온다. 아주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억울하다. 분해도 너~무 분하다. 완전 뿔난다! 내 힘 기르는 게 최고다. 내 게임기 탐내는 건넛집 아이 데려다 놀 생각했다면 꿈도 꾸지 마라. 어림없다. 원격 시스템으로 방해할 테니까. 오래 내버려두면 게임기는 못쓰게 된다. 나도 엄청난 손해지만 소문나면 영원한 외톨이 신세가 될 것이다. 왕따당해 마땅하다. 제 발등 제가 찧고 스스로 제 무덤 팠다.

    그 악동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럭비공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지금의 잠잠함도 또 뒤통수를 치기 위한 꿍꿍이 수작을 부리느라 그럴지도 모른다.

    개성공단이 폐쇄 위기에 놓였다. 남북한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셈이다. 직원들이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잘 돌아가던 기계·설비를 놔두고 발길을 돌리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차량보다 더 큰 부피의 짐을 싣고 돌아오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오죽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차 앞유리에까지 짐을 실었을까. 공단 폐쇄에 따른 피해액이 수조 원대에 이를 거란다. 정말 뿔난다.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엄포에도 동요되지 않는 우리의 의연함이 외국인들에겐 의아하게 보인단다. 안보불감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나도 안보불감증일까? 우선 ‘설마’ 전쟁이 일어나랴 싶었다. 퍼주기 식에 길들여진 북한의 겁주기라고 믿었다. 언제 닥칠지도 모를 위기 상황을 당장은 믿고 싶지 않아서 해낸 생각일 수도 있다. 6·25 휴전 이후에 태어났지만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수시로 머리 위를 나는 제트기의 무시무시한 굉음에 놀라 두려움과 공포에 떨곤 했다. 밤에는 간첩에게 쫓기거나 전쟁으로 가족을 잃을까 봐 가슴 졸이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런데 정말 전쟁이 현실로 닥친다면? 살아남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6·25 때처럼 피란 떠난다고 될 일도 아닐 듯하다. 가공할 위력의 첨단 무기 앞에 뛰어봤자 벼룩 신세가 아닐는지. 생사를 운명에 맡기며 나라가 지켜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을 보았다. 4·3사건은 남로당의 제주경찰서 습격이 발단이었다. 남로당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 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무참히 희생된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세 명 중 한 명꼴로 희생을 당했단다. 그 참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4·3사건은 가해자 피해자 모두 우리 국민이었다. 통탄할 일이다.

    지난 대선 때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그리고 극심한 세대 차이를 재확인했다. 북한 도발 시엔 그로 인한 파장이 우려된다. 가장 가까운 적의 씨앗이 내부에서 싹틀 수 있다. 국론 분열은 북한에 힘을 실어 주는 일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로 삼으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지금의 불안한 상황이 우리 국민을 똘똘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희숙(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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