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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서부경남 최초 이용기능장 구두회 씨

“이발은 즐거운 마음으로 솜씨 펼치는 예술”

  • 기사입력 : 2013-06-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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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두회 대한민국 이용기능장이 진주시 상평동 도동탕 이발소에서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다. “이발은 마음에서 나오는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구 씨에게 이발은 항상 즐거움이다.


    하얗게 기른 수염과 창이 달린 격자무늬 빵모자를 쓴 첫 모습은 화백이나 조각가를 연상하게 했다. 알고 보니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솜씨를 펼칠 곳이 캔버스가 아닌 사람 머리였고, 재료가 유화나 찰흙이 아닌 사람의 머리카락일 뿐. 구두회(54) 이용기능장은 이발을 ‘예술’이라고 말했다. 작업과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가난이 이발을 선택했다

    구 이용기능장은 초등학교 때 성적도 우수하고 체육이나 글쓰기 등 다른 분야에서도 줄곧 학교 대표를 맡았다. 전교회장까지 하면서 공부와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집안 사정은 학업을 허락하지 않았다.

    초등 4학년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해야 했고,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급마다 쌀포대 한 자루씩을 나눠주며 쓰레기를 모아달라고 부탁한 다음 고물상에다 쓰레기를 모아 넘기고 들기름을 받아 회비로 충당했다.

    그러니 초교 졸업 후 친구들이 중학교로 갈 때 혼자 양장점을 가야 했다. 그러다 다시 학교에 들어갔으나 아버지의 도박으로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된 뒤, 학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발소로 들어갔다.

    “할머니까지 모두 길에 비닐 깔고 요 깔고 3일을 그렇게 잤지요.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했지요. 열여섯부터 했으니까 벌써 42년째 됩니다.”

    이제는 이발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술을 가졌다. 지난해 서부경남 최초로 이용기능장이 됐고, 그중에서도 이발사들을 가르치는 기술강사에도 뽑혔다. 그가 매일같이 입는 유니폼도 기술강사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진주시 상평동 도동탕에서 하고 있는 그의 이용원에는 손님이 하루 평균 23명이 넘는다. 그의 이발 솜씨는 충북 제천과 제주, 부산 사람들까지도 진주로 끌어들이고 있다.

    얼마나 마음에 들게, 머리를 잘 자르면 그 먼 곳에서 찾아올까?

    “이발은 가위를 잡는 손보다 왼손이 어떻게 받쳐주느냐가 더 중요하거든요. 이름이 좀 거창한데…. 지구의 공전과 자전 기법이에요.”

    왼손을 편 상태에서 중지와 약지를 접은 뒤 소지를 정수리에 얹어 축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축을 움직이지 않고 손목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나가면서 머리를 친다. 이렇게 돌 때 엄지와 검지는 돈을 셀 때처럼 머리칼을 계속 잡아채 넘긴다.

    그는 우리 머리가 둥그니까 이런 식으로 자르면 부드럽고 자연스런 모양이 나온다고 했다.

    여기다 그의 빠른 손놀림은 정교함을 더욱 높인다. 디자인은 고민할 필요 없이 손님이 들어오는 모습만 척 봐도 어울리는 모양이 곧장 떠오를 정도다.

    하지만 가장 큰 비법은 따로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머리를 신나게, 즐거운 마음으로 자르지 않으면 제대로 안 나와요.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죠. 그러니 늘 즐겁게 일하려 하지요. 하하.”



    25년째 취미는 봉사

    어려운 집안 사정과 이발사라는 직업은 뭘 자르고 남겨야 할지를 그에게 가르쳤다.

    “제겐 5무(無)가 있어요. 술·담배·여자·노름·게으름 이건 배우지도 못했고, 평생 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가진 취미가 봉사활동이다.

    25년 전인 1989년 진주교도소로 미용제품을 납품하던 사람의 소개로 재소자를 가르친 것이 인연이 돼 24년 6개월 동안 직업훈련강사로 봉사했다.

    지금까지 368명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이발사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경남기능대회와 전국기능대회에서 수상한 제자도 여럿이지만 그는 무엇보다 전과자라는 과거가 들춰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가족들과 함께 자신을 찾아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 친구들이 아이들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오면 흐뭇하죠. 잘한 일 같고요.”

    이제는 이용사란 직업이 돈벌이가 되지 않으면서 2011년부터 재소자 직업훈련에서 이용업이 빠졌다. 이때부터는 요양원과 마을을 넘나들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아침 6시 4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13시간 일하고 1주일 중에 목욕탕이 쉬는 수요일이 유일한 휴일이지만 봉사에 그 시간을 투자했다.

    “육체가 힘든 건 잠깐 쉬면 괜찮아지지만 봉사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뭘로 표현할 수 없어요. 아내와 같이 봉사활동을 다녀 더 좋습니다.”

    집에서는 저금통 두 개로 나눔을 이어간다.

    사회와의 약속, 사랑의 약속이라고 적혀 있는 이 저금통에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하고 그 이상으로 번 돈에서 10%를 떼서 넣는다. 10만 원 이상부터 20만 원 미만으로는 1만 원, 20만 원 이상부터 30만 원 미만까지는 2만 원을 떼는 식이다.

    저금통 뒤에 붙은 18절지 3장에는 그동안 이 저금통에 모인 돈을 어디에 썼는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올해 초까지 조광래·백지훈 등 축구선수를 배출한 진주 봉래초교 축구부를 지원했으며, 유니세프에도 후원하고 있다.



    후회 없이 죽는 것이 목표

    인생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다 역으로 질문을 받았다. “왜 취재하고 기사 씁니까? 떵떵거리면서 살게요? 아니면 명예를 위해서?”

    말문이 막혔다. 이내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답변이 날아왔다.

    “목표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죽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지요. 누구에게나 오니까요. 하지만 내일 죽더라도 아쉽지 않으려면 죽음 이전의 목표를 잘 세워야 해요.”

    이용 기술로는 최고의 자리인 기능장에 오른 그는 앞으로 이용명장이 돼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나눠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명장은 기능장을 취득하고 5년이 지난 후에 신청할 수 있고, 봉사와 상벌, 저서 등으로 점수를 내 일정 점수 이상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경험을 살려 대학이나 평생교육원에서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해주고 싶은 게 또 다른 꿈이다.

    “헤어디자인학과나 평생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제가 머리는 잘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즘 아이들 머리를 직접 잘라주기도 하니까 그런 분들에게도 좋겠다 싶어요.”

    머리로 시작한 인터뷰는 끝도 머리로 마무리됐다.

    “머릿결이 심하게 상했네요. 집에 가서 달걀 노른자를 풀어 15분 정도 바르고 있다가 물로만 헹궈내요. 머릿결이 다를 거예요.”

    고객들의 머리를 세심하게 살피는 습관이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왔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엔 고객의 머리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의 예술은 손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래도록 뭉쳐온 내공과 배려가 한데 뭉친 것처럼 그에게는 사람들의 거칠어진 머릿결뿐만 아니라 거칠어진 마음까지 부드럽게 바꿔놓는 힘이 있었다. 달걀 노른자같이.


    글=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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