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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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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잊지 말자 6·25- 정옥자(서울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13-06-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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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마다 6월이 오면 제일 먼저 6·25전쟁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1950년 6월 25일 유난히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콩 볶는 소리(따발총 소리)는 요란한데 라디오에서는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총소리는 요란한데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고 하니 38선이 지척인 춘천의 시민들은 갈피를 못 잡고 피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 날 피란민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총알이 마당에 떨어지고 나서야 피란을 서둘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비상식량으로 미숫가루를 만들고 우리 네 자매는 꼬까옷으로 단장했다. 아마도 잠깐 나들이 떠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대로는 위험하다 하여 산길, 들길로 가던 피란길의 산천은 녹음방초 우거지고 뻐꾸기소리, 꾀꼬리소리 등 온갖 새들의 지저귐으로 하여 천국이 따로 없었다.

    뒤에서는 전쟁이 쫓아오고 눈앞에는 천국이 펼쳐지는 이율배반의 계절이었다. 처음에는 신나서 달려가던 피란길은 차츰 고행길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아홉 살, 그다음이 여섯 살, 네 살, 두 살이었으니 나는 차라리 어른 취급을 받으며 걸었다.

    청평의 솔이 마을에 이르자 서울이 점령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후 진행된 상황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고 우여곡절 끝에 춘천으로 돌아왔을 때는 엄마와 나 단둘만 남았다. 인민군 치하의 춘천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하늘에서는 쉴 새 없이 폭격이 계속되고 어른들은 부역에 끌려가서 집에 홀로 남아 방공호로 달려가는 일을 되풀이했다.

    미처 방공호로 피신하지 못했을 때는 두 엄지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나머지 네 손가락 두 쌍으로 두 눈을 누르고 솜이불을 뒤집어썼다. 폭격에 귀가 멀고 눈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숨이 컥컥 막히는 무더운 여름에 폭탄의 파편을 막을 수 있다는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고역쯤은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여름이 가자 드디어 국군이 들어왔다.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열렬하게 환영했다. 그러나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4후퇴로 매섭게 추운 겨울에 또 피란길에 올라 서울을 거쳐 신갈리쯤 갔을 때는 중공군과 맞닥뜨렸다. 중공군은 심리전이라 하여 밤이면 구슬픈 피리소리를 흘려보냈다. 꼭 귀신이 곡하는 소리 같아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1953년 7월 휴전이 되어 춘천으로 돌아와 학교에 가자 가족이 온전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모두 결손가정 출신이 됐다. 그러나 누구도 울지 않았다. 상처는 가슴 깊숙이 담아둔 채 질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누군들 그 상처를 잊을 수 있었겠는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6·25전쟁의 기억은 어제 일 같이 생생할 뿐만 아니라 그 상처는 소금을 뿌리듯 쓰라리다.

    올해가 휴전한 지 꼭 60년이 되는 환갑 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은 눈부신 바 있다. 이에 취해서 지금 우리는 평화기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감이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면역이 되어 그러려니 귓등으로 듣고 통일에 대한 의지도 흐려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공염불이 되어가고 있다.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국제전쟁으로 부상자 빼고도 쌍방의 군인 전사자만 240만 명이었고 민간인 사상자는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남북한 모두 폐허로 변했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면서 상호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등 정신적 피해도 컸다. 이 전쟁은 통일을 이루어야 끝나는 전쟁이다. 6·25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통일의 의지를 다지면서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임을 결코 잊지 말자.

    정옥자(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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