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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헬스로 건강 찾은 보디빌더 김창도 씨

병마 이겨낸 ‘67세 헬스보이’… “이번엔 미스터코리아”

  • 기사입력 : 2013-07-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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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의 한 헬스장에서 김창도 씨가 보디빌딩 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도 씨가 헬스 기구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


    "몸은 노력한 만큼 나타납니다. 꾸준히 관리해 미스터코리아가 되고 싶습니다."

    각종 보디빌딩 대회를 휩쓸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환갑을 넘었다는 말에 쉽사리 겉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많고 목소리는 다소 걸걸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투는 의외로 부드러웠고, 주름진 얼굴과 달리 몸매는 근육질을 자랑했다.

    각종 수술로 복부에 흉터가 많았지만 탄탄한 복근이 오히려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달 23일 경남도 보디빌딩대회에서 그랑프리상을 차지한 김창도(67·창원시축산농협 산하 창원축산회장) 씨를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의 한 헬스클럽에서 만났다.



    각종 병마에 시달리다

    농장을 운영하기 전 그는 소 싸움꾼이었다.

    싸움소를 키우면서 술과 담배를 하다 보니 몸이 좋지 않았다. 지난 1974년 부인 제갈옥자(62) 씨와 결혼하고 첫째·둘째 아들을 낳기까지는 건강에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1977년 모내기를 하던 중 새참으로 국수를 먹은 뒤 갑자기 구토를 했고, 마산의 한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위염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었지만 여전히 구토는 멈추지 않았고, 아픔을 참지 못해 큰 병원이 있던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부산으로 가던 중 참을 수 없는 통증에 급하게 진영의 한 병원에 갔고, X-레이를 찍은 결과, 장이 꼬였다는 진단에 절제 수술을 받았다.

    “너무나 참기 힘들었습니다. 농사철이라 일하다가 쓰러졌는데 물만 먹었는데도 구토가 나왔습니다. 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진 뒤 3일 만에 깨어났다고 하더군요.”

    싸움소를 키우고 대회 승패를 따지다 보니 쌓이는 스트레스는 술과 담배로 계속 풀었다. 그 탓인지 수술 이후로도 소화기관의 탈이 자주 났다.

    1980년에는 맹장 수술, 81년에는 늑막염 수술을, 85년에는 급기야 위의 4분의 3을 잘라냈다. 중추 소화기관을 절반 이상 도려내는 수술을 받다 보니 식단과 식사조절이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5년에는 담낭(쓸개) 절제술을 받았다.

    “아랫배가 너무 아프고 (통증을)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담낭을 잘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위 절제수술을 받을 때도 의사가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는데, 1년에 위 내시경을 2~3번씩 검사하다 보니 산다고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건강 이끌어

    그는 당시 자신의 소화기관을 이렇게 표현했다. “속이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졌다고…. 그래서 사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고.”

    하지만 둘째 아들이 건강을 되찾아줬다고 웃으면서 전했다. 경상도 사나이다 보니 표현하는 게 서투르고 부끄러워서 아직 아들한테 “고맙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고 했다. 말 안 해도 안다면서….

    둘째 아들인 경진(37) 씨는 현재 명서동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에게 헬스를 권유할 당시 그는 클럽 코치로 활동 중이었다.

    ‘뛰는 것도 아니고 실내에서 근육 만드는 게 어떻게 직업이 될 수 있지….’ 밭농사를 하면서 소를 키우던 그는 당시 아들의 직업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처럼 자신의 성격과 닮은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건강을 생각해 술·담배를 끊은 그는 아들의 권유로 2003년 헬스를 처음 접했다.

    러닝머신에 벤치프레스…. 1~2시간가량 운동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체질에 맞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농사일과 아주 달랐습니다. 농사를 하는 시간과 비교하면 지치지 않고 힘도 들지 않았어요. 피로를 못 느꼈죠. 그래서 그런지 보디빌딩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1년 정도 운동을 하면서 아들이 코치까지 해주다 보니 근육량은 늘어나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땐 이렇게 열심히 오랫동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보디빌더의 길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밀어붙이는 성격 탓에 헬스를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6년가량 운동을 하니 근육이 형성됐고, 아들의 권유로 2009년 창원시 보디빌딩 대회에 첫 출전해 중년부 2위에 올랐다. 기쁨보다는 1등을 못 했다는 아쉬움이 운동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첫 출전해 2위에 올랐다는 기쁨보다 1등을 못 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며 “가족들이 축하해 줬지만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창원시 보디빌딩대회·경남도 보디빌딩대회, 국민생활체육회장배 전국보디빌딩대회,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보디빌딩대회에서 장년부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식단 변경·미스터코리아가 목표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도 식사 후에는 속이 쓰리고 신물이 넘어오는 일이 많았다. 술·담배를 끊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데도 속은 아팠던 것.

    “위와 담낭 등 수술을 받은 자리가 너무나 아팠고, 역류가 일어날 때마다 힘들었습니다.”

    병원에서 내시경 진단을 받으면서도 염증 외에는 다른 증세는 없었다. 그러자 2011년 둘째 아들이 식단을 바꿔보자고 했다. 전문 보디빌더로의 수준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이것만 먹고 버티느냐고 물었지만 따라하다 보니 근육량은 더 늘어났고, 역류의 고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정말 식단을 바꾸니 나를 힘겹게 하던 증상이 귀신같이 없어져서 놀랐습니다.”

    운동에 빠지면서 통증이 사라지니 그는 젊어지고 싶은 마음도 강해졌다. 남들이 근육을 보며 부럽다고 할 때마다 자신감도 붙었다.

    창원 북면에서 한우 50마리를 키우고 있는 그지만 하루 중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운동하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운동 후엔 밭일도 혼자서 거뜬히 할 정도다.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몸과 마음 고생이 많았지만 생각을 바꾸고 시작한 운동이 건강을 되찾아주고, 젊게 해줘 정말 좋습니다.”

    부인 제갈옥자 씨도 남편과 함께 헬스클럽에서 요가 강사를 하는 둘째 며느리와 건강을 다져 가족 모두가 헬스 가족.

    지난달 23일 경남연합회장배 보디빌딩대회 그랑프리(50세 이상 1위)를 차지한 김창도 씨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미스터코리아가 목표”라며 “대회에서 아들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모두 운동을 하니 정말 행복하다”며 “건강을 잃었던 나를 이만큼 이끌어준 둘째 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경진아, 고맙고 사랑한다.”


    글=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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