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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짜장면으로 나눔 실천 정상술 씨

“짜장면 한 그릇으로 나눈 사랑, 기쁨은 곱빼기죠”

  • 기사입력 : 2013-07-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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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정상술·장명숙 씨 부부가 장애인복지관 원생들에게 대접할 짜장면을 담으며 웃고 있다.


    오전 10시 30분 창원시 의창구 동읍의 한 중국집. 점심시간이라기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벌써부터 가게가 소란하다.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들은 인근의 예향복지센터에서 온 지적장애인 원생들. 이들을 식당으로 초대한 이는 이 중국집을 운영하는 정상술(54) 씨다.

    한 달에 한 번 정 씨의 가게에는 장애인복지관 원생들이 입가에 짜장을 묻힌 채로 노래를 부르고 왁자한 웃음소리를 내며 즐겁게 점심식사를 하고 간다.

    정 씨는 지적장애인 원생들이 떠나고 나면 그릇을 치우기 무섭게 들이닥치는 점심 손님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맺힌다.

    2011년 11월 동읍에 중국집을 연 후에 장애인들과 동네 어르신 등 특별한 손님을 초대해 짜장면 한 그릇으로 사랑을 나누는 정 씨를 만났다.



    가난한 유년, 고소한 향기에 이끌려 요리의 길로

    “그때는 다들 배고팠죠. 저도 집이 가난해 어린 나이에 일찍 사회로 나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달래준 버팀목이었습니다.”

    어려서 전남 완도에 살았던 정 씨는 1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외가가 있는 부산으로 이사왔다.

    가난한 가정형편에 지체장애가 있는 어머니가 가족을 온전히 부양하기 힘들어 정 씨와 그의 누이는 학업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그때 외삼촌의 친구가 운영하는 부산 진구 양정동의 중국집에서 처음 일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 중국집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집에 들어가서 처음 6년은 배달만 했습니다. 이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중국집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요리를 배웠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중국인 주방장 밑에서 고생이 많았지만, 배운 것이 없어 어깨 너머 요리 공부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죠.”

    그는 양정동과 영도 일대 중국집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요리를 배웠는데, 가게를 옮길 때마다 청소부터 시작해야 되기 때문에 주방에 들어가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더군다나 당시 중국집 주방을 쥐고 있던 화교 출신 주방장들은 말도 통하지 않아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되어도 요리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20대 때 아내 장명숙(54) 씨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 더 열심히 일했다.

    사천 출신인 아내는 당시 부산시 금정구 금사동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아내에게 한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구애한 끝에 여자친구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처가에서는 6남매 중 막내로 귀여움을 받고 자란 아내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에게 시집보낼 리 없었다.

    결국 정 씨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아내와 주방을 떠나 원양어선을 타면서 모은 500만 원으로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자신의 중국집을 차렸다. 이후엔 결혼도 하고 아내와 함께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여유 생긴 후 이웃 돌아보니 어머니 떠올라

    열심히 일한 끝에 2006년 두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그때부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정 씨는 40여 년을 일만 하면서 쉴 새 없이 달려온 터라 주변에 친구도 없고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다녀본 기억도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됐지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길수록 그의 마음속 어딘가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것이 어머니 모습이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3급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보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찾았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께만 효도하는 것을 넘어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을 돕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처음 간 곳은 부산시 연제구 연산경찰서 뒤 청우원이라는 장애인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요리솜씨를 발휘해 점심식사를 대접하면서 봉사의 기쁨을 알게 된 그는 이후 인근 동사무소를 통해 무료급식소 등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도 금목걸이를 하고 와서 무료급식소에서 한 끼를 때우고 가는 것을 보고는 직접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가게를 쉬는 날 재활원·복지관의 문을 두드리며 활동영역을 넓혔다.

    “봉사활동을 할 때면 오토바이 배달원들과 종업원들도 함께 데려갔습니다. 배달을 하는 친구들 중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뒤 돈을 벌러 중국집에 오는 경우가 많고, 주방 종업원들은 중국에서 돈을 벌러와 고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봉사를 함께하면서 세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랐죠.”

    쉬는 날 봉사를 하면 특별수당을 주지 않는 이상 달갑게 그를 따라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과 정을 나누는 법을 알고 세상에 감사하는 법을 알게 돼 가정과 학교로 돌아가는 배달원도 있었다.

    “배달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 가게 일은 더 힘들어졌지만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부산에서 일을 할 때는 가끔씩 배달을 하던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했다며 감사인사를 하러 와서 음식을 팔아주기도 했는데, 창원에 온 뒤로는 연락이 끊겨 아쉽습니다.”



    후덕한 시골 인심에 나눔의 정 더하고파

    정 씨 부부는 2011년 10월 창원시 의창구 동읍으로 이사왔다.

    배달원들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하곤 해 더 이상 젊은이들이 다칠 수 있는 배달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박한 도시생활도 청산할 겸 경남의 교외지역을 돌아보던 중 그가 발견한 곳이 동읍이었다.

    “친구 소개로 주남저수지 일대를 구경하고 가다가 1층이 비어 있는 현재 가게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시골처럼 전원풍경도 있고 유동인구도 꽤 많아 배달을 하지 않아도 식당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정 씨는 그 길로 점포를 임차해 오리고기 식당이었던 가게를 수리해 2011년 11월 ‘손짜장 1번지’라는 중국집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시작한 일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새로 이사온 터라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게를 열고 곧바로 인근 모암마을과 다호마을의 어르신 30여 명을 가게로 초대해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식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홍보의 일환으로 알고 그의 봉사활동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꾸준한 노력은 곧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에게 인정받았고 후덕한 시골인심의 도움으로 가게와 봉사활동 모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지난 3월부터 두 번째 화요일, 예향원 지적장애인을 가게로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동읍파출소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예향원 지적장애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봉사일마다 배식을 도와주고 색소폰 공연 등으로 잔치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과 봉사가 꿈

    오후 3시께 점심 시간이 끝나고 잠시 숨돌릴 틈이 생긴 그에게 앞으로 인생의 목표나 존경하는 사람, 감명 깊게 읽은 책 등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가방끈이 짧은 탓에 거창한 목표나 남들에게 일러 줄 교훈거리는 없다”고 말했다.

    “별다른 목표 없이도 잘 살았던 예전처럼 앞으로도 그저 일과 봉사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 생각입니다. 예향원은 생긴 지 꽤 된 장애인복지센터인데도 2009년 의창구 신월동에서 동읍으로 옮겨온 후 지역사회의 후원이 많이 끊겼다고 합니다. 동읍 주민들이 저를 따뜻하게 받아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동진노인복지센터 같은 지역 노인·장애인 시설로 봉사활동을 넓혀갈 생각입니다.”

    그는 수타로는 무료 급식이 버거워 국수 뽑는 기계까지 살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동읍 주민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정 씨는 바쁜 일손에 상의도 없이 이것저것 남들에게 내주어도 짐짓 속없는 듯 곁에서 말없이 자신을 도와주는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글= 원태호 기자

    사진= 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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