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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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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철없는 철새들- 이우걸(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3-07-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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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노래해서 화제가 되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새로 펴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 ‘한국의 정치인’이란 작품이 있다.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 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 / 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 /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 / 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 / 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 / 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주고 / 집안 청소나 설거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 없다. 여기 그려진 현실은 당연히 이 시 속의 가상(假想)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 속의 가상현실을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실제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시에 공감하는 독자가 많다. 공감하는 독자가 많다는 것은 이 시가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런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뜨이는 성과가 별로 없다. 또 이 풍경이 중앙정치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우기는 사람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주기가 어렵다. 학식도 인품도 의심스러운 사람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예사로 주는 지역 대학들이 있고, 무소불위의 파워로 제왕적 지자체장을 지낸 뒤 사법 처리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역 정가의 미풍은 태풍을 예고하는 신호다. 텃새들은 텃새들대로 새로운 일전을 준비하고 있고 철새들은 철새들대로 성공을 꿈꾸며 조심조심 끼어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텃새라고 무조건 믿을 수도 없고 철새라고 굳이 내칠 필요도 없다. 여러 지역, 여러 기관에서 경험을 쌓은 눈 밝은 철새들이 있다면 근시안적이고 비전 없는 텃새들보다 훨씬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 때만 고개 숙이고 찾아오는 철새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더 경계하고 의심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진다. 그 첫 번째, 당신은 정말 이 지역을 사랑하는가? 두 번째, 당신은 이 지역에 대한 사랑만큼 철저한 공부를 하고 왔는가? 세 번째, 중앙정치의 어떤 힘만을 믿고 지역 일을 맡으려는 것은 아닌가? 네 번째, 이 일을 맡게 된다면 스스로도 행복하고 지역민도 행복해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당신은 봉사하는 습관이 있는가? 이다.

    흔히 갑자기 날아온 철새들의 수사는 상투적이다. 이 지역이 고향과 같다거나 제2의 고향이라거나 하는 경우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지키기 어려운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자금력이 유일한 실력인 철새의 경우 정작 일전을 벌이게 되면 룰과 관계없이 심각한 위법행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앙 정치에 연줄을 대며 우쭐거리는 철새는 대개 지역 관리 대리인 수준이다.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마스터키를 가진 권력자가 어디 있는가. 대부분 이런 철새들은 허풍과 비현실적인 공약을 남발한다.

    지역 단체장이 되거나 의원이 될 경우 지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그 직무를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다. 그런 자세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습관화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 따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울러 열과 성을 다해서 주민들의 신임을 얻으면 자연히 권력자가 된다. 자기가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가질 수밖에 없는 영향력이 권력이다. 직무와 관련된 공권력과 주민의 신임으로 얻게 되는 영향력이 합쳐지면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생긴다. 이 힘을 자제하여 현명하게 쓸 줄 아는 지혜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철저한 검정도 없이 권력의 맛을 보려고 뛰어드는 철새가 있다면 철없는 철새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벌써부터 그런 철새들을 가려내기 위해 조심조심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다.

    이우걸(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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