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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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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마을 아, 본향! (22) 사천시 사남면 능화마을

뒤엔 나비산 감싸고 앞엔 죽천강 흐르는 배산임수 마을
임금능지 ‘능’·꽃밭등 ‘화’ 따서 이름 지어
창원 구씨 집성촌 등 32가구 70여명 거주

  • 기사입력 : 2013-07-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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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천시 사남면 우천리 능화마을.
    고려 현종이 아버지 욱을 만나기 위해 오르던 고자치.
    능화마을 앞 죽천강.
    능화마을 능화숲.
    능화마을 능화들.




    욱(郁)은 말이 없다. 매미가 우는 여름 한낮, 땀을 뻘뻘 흘리며 고자치(顧子峙:아들을 기다리는 고개)를 올랐을 어린 아들 순(詢)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욱은 ‘아비를 잘못 만나 네가 고생이구나’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는 조카며느리를 범해 순을 낳고 와룡사로 유배된 죄인이었다. 순은 아버지를 따라 인근 배방사에 4년간 머물며 한 달에 한 번 꼴로 고자치에 올랐다. 그리고 순은 유배 중 생을 마친 아버지를 인근 나비산 꽃밭등에 묻고 개성으로 향했다.

    1009년 고려 8대왕에 오른 현종(顯宗) 순의 이야기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한 안타까운 부정이 스민 이곳은 사천시 사남면 우천리에 위치한 ‘능화마을’이다.


    ◆능화마을

    사천시 사남면 주민센터에서 지방도 1009호선을 타고 구룡산 방향으로 5~10분간 차를 달리면 능화마을이 나온다. 능화마을의 이정표 역할은 지방도 좌측의 구룡저수지가 하고 있다. 차창을 열고 탁 트인 하늘과 강처럼 이어진 저수지를 바라보면 수려한 경치에 한낮 더위를 잊을 정도다.

    능화마을은 임금의 능지(陵址)에서 ‘능’ 자를, 나비산 꽃밭등(花田)의 ‘화’ 자를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조선 성종(成宗) 초기인 1470년 4대 조(祖)인 순종(順從) 공이 능화로 입향한 후 창원 구(具)씨의 집성촌이 형성된 이래 현재 32가구 7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당시 사남면에는 능화마을을 포함해 송암·예의동 등에 전(全)씨와 박(朴)씨 집성촌이 있었다고 한다.

    능화마을은 고자치에 얽힌 현종의 이야기, 왕욱의 유언과 꽃밭등 묏자리, 쌍유봉과 이팝나무 등 역사적 사건과 서정적 이야기를 지닌 곳이다.


    ◆나비산과 이팝나무

    능화마을은 병풍처럼 마을 좌측으로 이구산(尼丘山)과 우측에 흥무산(興霧山)을 업고 있다. 입구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뒤로 양쪽에 펼쳐진 이구·흥무산의 산자락이 마치 나비 날개 모양과 같다고 해 오래전부터 나비산으로 불렸다. 공자의 자호를 딴 이구산과 산 아래 주민들이 넉넉한 작물과 인심에 흥겨워 춤을 춘다는 의미의 흥무산이라는 명칭이 마을의 성격을 짐작게 한다.

    이구산 능선은 삐죽하게 모난 곳 하나 없이 평평하게 깎아놓은 모양이다. 특히 이구산에서 마을 쪽으로 도톰하게 솟은 두 개의 봉우리는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다” 하여 쌍유봉(雙乳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덕분에 젖가슴(쌍유봉) 아래 놓인 능화들 33만여㎡는 쌀·보리·밀의 작황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옛 능화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단 2그루뿐인 이팝나무의 개화를 보며 한 해 풍년을 점쳤다고 한다. 제사상에 올릴 쌀밥을 입에 넣었다가 시어머니에게 호된 꾸중을 들은 며느리가 ‘이밥, 이밥(쌀밥의 옛말)’하며 죽은 자리에 났다는 이팝나무는 꽃이 피면 작황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옛 마을사람들은 이팝나무에 꽃이 피지 않으면 며느리가 불경한 탓이라고 믿어 시댁에 보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풍수

    풍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배산임수다. 아비 같은 이구산·흥무산 산자락과 어미 같은 들을 흘러온 감나무정(井)이 마을 앞 죽천강에서 만난다. 예부터 물이 시원하고 달다는 이 냇물은 죽천강 앞을 지나며 자식 같은 숲인 능화숲을 키웠다. 능화숲은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숲이었고, 지금은 외지인에게도 넉넉한 품을 내주고 있다. 7~8월 피서철 주말이면 하루 200여 명, 매년 2만5000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3578㎡ 규모의 능화숲에는 현재 느티나무·포구나무·서나무 등 6종 67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죽천강은 역수(逆水, 물이 거꾸로 흐름)라고 한다. 우리나라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로 하천이 대개 북에서 남으로 흐르지만, 죽천강은 특이하게 남에서 북으로 흘러 사천만과 만난다. 그래서 주민들은 역수를 다스리지 못하면 복을 얻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믿는다.

    주민 구종갑(64) 씨는 “고려시대부터 역수의 기운을 눌러 복을 빨리 입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있다”며 “고려 8대조 현종이 자신의 아버지 욱의 묏자리를 쓸 때 각별히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역수와 현종

    왕욱은 고려 태조 왕건의 8번째 아들이었지만, 경종(5대왕)의 사후 그의 차비였던 효숙왕후와 정을 통해 순을 낳고 현 사천시 백천동의 와룡사로 유배됐다. 풍수에 밝았던 욱은 죽기 전 아들 순(현종)에게 금(金) 주머니를 몰래 주며 “내가 죽거든 금을 술사에게 주고 꽃밭등에서 장사를 지내게 해야 한다”며 “반드시 내 시체를 엎어서 묻게 하라”고 당부했다.

    욱의 능지(陵址)가 있는 꽃밭등은 고자치 인근 현 흥무산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순은 역수를 다스리기 위해 유언대로 아버지 욱의 시체를 엎어서 묻었다. 또 묏자리는 통상 남향이지만 북향으로 썼다. 순은 현종으로 등극한 뒤 아버지 묏자리를 개성으로 옮겼다. 현재 흥무산 중턱의 꽃밭등에는 표지만 남아 있다.

    능화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0년 고자치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고 욱과 순을 기리고 있다. 고자치에서 능화마을 방면으로 5분쯤 걸어가면 산중턱에 욱이 묻혔던 꽃밭등이 있다. 비록 현재는 능지만 남았지만, 마을의 풍수를 담은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하지만 능지로 오르는 15분 남짓의 산길이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뿌리째 뽑힌 나무와 무성한 잡초가 외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등산객 조학규(62·사천시 벌리동) 씨는 “흥무산을 찾는 이유는 고려 현종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며 “관광 소재를 발굴하려고 지자체가 연구하는 곳도 있는데 이미 소재를 갖춘 곳이라면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글= 정치섭 기자 sun@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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