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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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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말과 칼 - 도희주 (동화 작가)

  • 기사입력 : 2013-07-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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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불러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 더워 죽겠다, 바빠 죽겠다, 배고파 미치겠다, 짜증나 미치겠다. 추워 미치겠다. 심심해 미치겠다….

    좋은 것도 미치거나 죽겠다고 호들갑이다. 하물며 맛있게 먹고서도 죽겠다니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심찮게 듣고 뱉는 말들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의 오싹한 진짜 의미에 대해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정작 미치거나 죽는 일이 눈앞에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시피 하는데도 말이다.

    한자로 ‘미칠 광(狂)’자는 개나 짐승을 뜻하는 ‘개사슴록( )변’에 ‘임금 왕(王)’자를 쓴다. 그러니 미친다는 것은 입에 거품 물고 서로 잡아먹으려 드는 것들 중에서도 제일 독한 놈에 빗댄 것이다. ‘죽을 사(死)’는 날카로운 비수(匕)에 찔려 뼈가 앙상해( )지며 죽거나 죽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소름끼치는 이 말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난폭한 사건들을 말과 연결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것에는 인색하다.

    애들은 싸우면서 자란다고 하지만 교실에서도 부정적인 일상의 대화가 위험 수위에 이르러 언어의 폐단이 범람하고 있다. 누가 더 험한 말을 잘하고 누가 더 난폭한 행동을 잘 취할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장난처럼 오가다 결국엔 몸싸움으로 이어진다. 혀를 칼처럼 휘두르다가 나중에는 결국 진짜 칼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들이 습관이 되거나 약간의 의견 충돌에도 잔혹한 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자기 자신마저 망치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그것이 평소의 말 습관이 행동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은 행동을 조절하는데 결국 거칠어지는 말들이 거칠어지는 행동을 가져온다.

    영화에서도 게임에서도 말들이 거칠어지고, 심지어는 국민에게 말과 행동의 규범을 보여야 할 정치인마저 거친 언사와 거친 행동을 예사로 쓰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분하게 주장하기보다는 우선 거친 말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설득하고 협의하기보다는 거친 행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내가 하는 말(言)부터 머리(두)로 두(二) 번 생각해서 입(口)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말의 품위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제도가 입법화되면 어떨까. 물론 터무니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에서 말의 적절한 씀씀이와 품위를 단계별로 나누고 거기에 벌칙과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교사가 위에서 아래로 지적하는 단순한 계도보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토론과 협의를 통해 반에서 친구들이 그날 사용했던 언어 중에 지적하거나 박수 받을 말들을 골라내고 토론을 통해 스스로 제어기능을 기르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정치인들을 비롯한 우리사회 공인들의 어록을 뽑아 토론 테이블에 올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언어는 인격의 바로미터다. 대부분의 학자나 사회지도층이 우리 사회의 언어갈등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실제로 다루어야 할 교육계나 학계 그리고 정치권과 정부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죽겠다, 미치겠다 하면서도 살고 있듯이 이제는 말꼬리마다 긍정의 옷을 입혀 봤으면 한다. 힘들지만 살 만하다, 덥지만 살 만하다. 귀찮지만 해보니 즐겁다, 밉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웃음이 난다 등으로.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엔 바람 앞의 등불처럼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라는 건 미치도록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삶의 엄숙한 기로에 선 사람들은 결코 미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물며 살아 있는 사람이 그래서야…. 연일 폭염으로 고공 행진하는 불쾌지수가 유쾌지수로 바뀌는 세상을 일상의 대화에서부터 만들어 보자.

    도희주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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