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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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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둥근 것들에 대한 예찬-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13-08-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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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둥근 것들이 좋다. 둥근 것은 각이 없고 앞뒤가 없고 아래 위가 없어서 좋다. 둥근 것은 소리 내지 않고 잘 굴러가고 굴러간 자리에서 서거나 앉거나 누워 편안하게 집을 짓고 잘 살아줘서 좋다.

    제 몸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굴러가고 높은 곳으로 거슬러 오르려 고개를 쳐들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일치감치 나는 둥글게 생긴 한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다가 결혼해서 둥근 제 어미를 닮은 아이 둘을 얻어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햇덩이처럼 둥근 아이가 둥근 엄마의 젖을 먹고 둥글게 자라는 걸 바라보던 흐뭇한 마음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도 생생해서 잊히지가 않는다.

    온가족이 둥근 두레 밥상에 둘러앉아 둥근 공기에 밥을 퍼먹고 둥근 이야기꽃을 피울 때는 행복이야말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들의 둥근 둥지를 만들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났지만 둥근 둥지를 기억하며 둥글게 살아주면 좋겠다.

    그렇다고 둥근 게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각이 있는 것들에 비해 무난하고 평범하니 많은 적이 없고 적이 없으니 큰 탈날 게 없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둥근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는 얘기에 목청을 좀 높인 것뿐이니 입이 근질거리는 혹자가 있더라도 아름답게 인내하며 들어주면 좋겠다.

    둥근 것들은 그냥 보기에도 좋다.

    창원의 둥근 용지호수도 좋은데 호수의 뱃살을 찢으며 둥글게 원을 그리는 잉어 떼의 유영은 또 얼마나 보기 좋은가. 동양에서 제일 광대하다는 시청 앞 둥근 로터리가 좋고 둥근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이 세상 둥근 지구가 좋다.

    둥글지 못한 것들은 몸에 각이 있다. 모서리가 뾰족하고 날카로운 뿔을 가지고 산다. 사람들은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섣불리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난 생각들로 갈등을 부추기고 끊임없는 다툼을 이어간다. 한 자리를 차지하면 일어설 줄 모르고 가까이 다가오면 뿔로 쳐서 받는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사과하지는 않고 왜 거기서 얼씬대느냐고 화를 낸다. 인면수심이고 적반하장이다.

    돌아보면 둥글지 못해 생기는 문제들은 어디에나 있다.

    출근길 교차로에 차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 층간 소음으로 이웃끼리 법정다툼을 일삼는 사람들,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칼로 물을 베지 않고 부부의 연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사람들, 민심을 저버리고 입신양명하고 권모술수하며 당리당략을 위해 쓸개도 빼 던지는 정치인들 모두가 둥글지 못한 마음들로 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가면 손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 다가오길 기다리다 결국 등을 보이며 멀어져가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양보와 배려, 용서와 화해, 소통과 화합을 어루만지려는 손길을 저버리고 신뢰란 음식을 불신이란 그릇에 담아 절망의 소스를 찍어먹으며 날로 황폐해가는 영혼과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양보는 모르고 헌신을 멀리하며 희생은 외면하는 데 익숙하다. 용서할 줄 모르니 용서받지 못한다. 처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니 주위는 썰렁하고 마음은 삭막해서 황량한 겨울 벌판처럼 가슴 중앙으로 바람 한 줄기가 씽씽 불며 먼지만 날려댄다.

    뾰족한 모서리의 각을 없애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방법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시기와 질투도 밀가루반죽처럼 자꾸 주물럭거리면 둥글게 빚어진다.

    각지고 날 선 것들은 어디에 담아도 삐죽이 튀어나와 무기가 된다. 몸을 굴러 각을 갈자. 눈물겹게 자신을 갈아 둥근 몸과 마음을 만들자. 어느 누가 와서 부딪쳐도 상처가 나지 않도록 뿔난 마음을 갈고 다듬어 사람들끼리 가슴을 비비고 어깨를 걸며 둥글게 살아가자.

    천 년이 넘도록 모진 바람을 이마로 받아 완만한 능선을 만든 산으로 사람이 먼저 올라간다. 만년이 넘는 세월을 물방울을 받아 뾰족한 제 몸을 깎은 바위에는 바람도 퍼질러 앉아 쉬거나 누워 잠들다 간다.

    세상의 신호등이 둥근 것은 둥글지 못한 것들의 교통정리를 위해서다. 진정한 희망의 얼굴을 본 적 있는가. 둥글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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