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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문화’ 청소년 극기 프로그램 전면 폐지해야- 허영희(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3-08-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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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충남 태안 안면도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보도에 의하면 2박 3일 훈련 동안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고 한다. 자격증도 없는 교관들이 절반이었고, 현장에서 학생들은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은 채 사지로 내몰렸다. 인솔교사는 무관심한 것을 넘어서 학생들이 훈련을 받는 낮 시간에 술을 마셨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총체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극기훈련이라는 명분 하에 해병대를 사칭한 사설 훈련캠프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니, 관계기관에서 이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을 실시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지만, 관계기관도 난립돼 있고 사설 훈련캠프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내고, 그들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극기훈련을 빙자한 병영체험이나 군사훈련과 같은 청소년 체험캠프의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이러한 캠프 참여가 과연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청소년 극기훈련 프로그램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름 아닌 ‘군사문화’를 집단적으로 경험케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시나 유사시가 아니다. 군대나 병영문화에 대한 체험은 남자라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게 된다. 그런데도 왜 비싼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10대의 어린 나이에 해병대 문화나 군대문화를 맛보게 할까?

    우리 사회에는 ‘진짜 사나이’라는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진짜 사나이’란 용감한 병사, 진짜 군인다운 군인을 말한다. 진짜 사나이를 양성하는 군대에서는 상명하복, 단결, 극기, 조직력이 강조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이는 21세기가 추구하는 조화와 타협, 협상력을 키우고 공동체를 평화롭게 이끌어가는 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병영체험의 장에 어린 아이들이 내몰리고 있다. 집단적인 얼차려를 통해 아이들을 군기 잡는 입소식에서부터, 군대 훈련소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체력훈련으로 훈육하고, 밤에는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야간극기훈련을 시킨다.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가 없는 아이들은 낙오자로 취급된다.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려 사지에 몰려도 ‘못하겠다’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리는 귀신 잡는 해병대”, “하면 된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딱딱한 구호들! 일제 강점기의 군국주의 하에서, 아니면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잔인함과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력히 요구하던 전시나 유사시에나 들어봄직한 구호들이 지금 아이들의 입에서 토설된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의 인간관계가 중요시되는 시대이다. 물리적인 힘보다는 기술이 경쟁력으로 작동하고, 언어감각과 유머감각을 갖춘 사람이 좋은 사람,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군사문화를 이른 나이에 체험한 아이들은 장차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

    이제 극기훈련의 내면에 깔려 있는 군사문화의 망령과 소음을 걷어내야 할 시점이다. 군사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을 잠식해 있고, 그 시대적 유용성을 일부 인정한다고 해도, 아이들에게까지 군대식 틀에 끼워 사지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청 청사마다 내걸린 ‘21세기를 선도할 창의적인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말은 공허한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남교육청이 다른 교육청보다 발 빠르게 학교 체험학습의 실태파악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이번 실태 파악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력을 갖추고, 평화로운 내면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도록 경남교육청의 지도, 감독을 기대해 본다.

    허영희(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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