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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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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괴테와 노산- 김복근(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3-08-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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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년 전 폴란드를 여행하면서 나치 독일이 양민을 집단학살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가게 됐다. 이곳은 유태인과 나치즘을 반대한 4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처형된 역사의 현장이다. 흑백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보듯이 그 잔혹함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스실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안경, 머리카락, 신발을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어서 비알리츠카 소금 광산으로 갔다. 세계 12대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유네스코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비알리츠카 소금층은 18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바닷물이 증발한 후 소금만 남았는데, 10㎞ 정도의 길이와 1.5㎞ 두께의 암염층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중세기에는 소금무역으로 국가 재정의 3분의 1을 충당했고, 지금은 관광 수입으로 국가의 주요 재원을 충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소금 광산을 관광할 때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야 하는데, 처음 378개의 나무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64m가 된다. 여기서부터 약 3㎞를 걸어 28개의 방으로 이동한다. 소금 광산엔 소금을 파내면서 생긴 2040개의 방이 있다. 모든 방을 연결하는 복도의 길이는 약 200㎞에 달한다.

    크고 작은 방에는 킹가의 성당, 최후의 만찬, 코페르니쿠스, 광부와 목수 등 다양한 동상들이 있는데, 독일의 유명한 시인 괴테의 동상이 유난히 눈에 띈다.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대량 학살된 자국민을 생각하면 어떻게 독일 시인의 동상을 그대로 세워둘 수 있는가 의문이다.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동굴에 오에 겐자부로(지한파로 알려진 일본인 노벨상 수상작가)의 동상이 세워졌다면 괴테의 동상처럼 그 원형이 제대로 보존될 수 있을까.

    보도에 의하면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대학살의 피해자인 폴란드와 가해자인 독일은 과거의 역사적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폴란드 국민의 84%가 독일에 적대적이었지만, 최근에는 50% 정도로 낮아졌다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은 군사와 경제의 긴밀한 협력으로 ‘역사적인 화해’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대는 화해와 통합의 시대다. 차제에 우리 마산에서 야기되고 있는 갈등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3·15의거를 왜곡하였다고 비판받고 있는 노산의 경우, 전체적인 문면을 살펴보면 그런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마산 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 분개한 생각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마는 무모한 흥분으로 일이 바로잡히는 법이 아니다. 좀 더 자중하기를 바란다”라는 말은 원로로서의 염려와 당부에 다름없다. 더욱이 대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각료의 경질까지 요구하고 있다. 비상시국의 긴박한 상황에서 마산을 걱정하는 마음이 없다면 감히 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암울한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창기의 정국, 동족 전쟁의 참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그의 국가관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추론컨대 조국과 민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만은 자명하다. 전쟁의 참화와 수백만의 동족이 살해된 폴란드도 독일과 군사동맹을 맺을 정도로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소금 광산에 있는 괴테의 흉상을 보면서 마산역 광장에 세워진 가고파 시비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고파 시비를 건립한 분들의 논리는 간명하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노래가 정말 좋아서 건립했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수백만을 학살한 적의 나라 시인도 아니고, 우리나라 우리 고향 선배 시인의 시비를 세운 일이다.

    “불의를 발견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불의는 남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괴테의 말이다. 지역에서 주장하고 있는 일부의 논리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작은 과오 때문에 더 큰 업적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산을 보려고 하면 산에서 멀리 떨어져 보아야 한다. 노산이 추구한 진리를 알고 싶어 1931년 간 <조선사화집>을 읽고 있는 작금이다.

    김복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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