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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 이야기] 부자의 그릇

  • 기사입력 : 2013-08-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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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 한다. 내게 있는 것은 깨달아 굽어보며 ‘이것’이라 한다. ‘이것’은 내가 내 몸에 이미 지닌 것이다. 하지만 보통 내가 지닌 것은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사람의 뜻은 성에 찰 만한 것만 사모하는지라, 건너다보며 가리켜 ‘저것’이라고만 한다. 지구는 둥글고 사방 땅덩어리는 평평하다. 천하에 내가 앉아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백성은 자꾸만 곤륜산을 오르고 형산과 곽산을 오르면서 높은 것을 구한다. 가버린 것은 좇을 수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하지 못한다. 천하의 지금 눈앞의 처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하지만 백성은 높은 집과 큰 수레에 목말라하고 논밭에 애태우며 즐거움을 찾는다.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죽을 때까지 미혹을 못 떨치고 오로지 ‘저것’만을 바란다. 하여 ‘이것’이 누릴 만한 것임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어사재기(於斯齋記)란 글에서 한 말이다.(정민- 다산의 재발견 중에서, 휴머니스트)

    다산의 말이 아니더라도 인간사를 보면 ‘저것’에 목말라하는 사람뿐인 것만 같다. 온통 조금이라도 더 갖자고 덤비니 말이다.

    작년 임진(壬辰)년의 일이다. 이마가 넓고, 코는 둥글고 넓적하며 입은 널찍하고 두터워 한눈에 보아도 후덕해 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상(像)을 지닌 여성이 내방했다.

    성격 또한 활달하고 거침이 없었다. 사주를 봐도 신강(身强)하고 식신생재(食神生財)를 하고 있으니 부자팔자다.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여사장인데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거기에 있는 식당들이 다 잘되고 있으니 식당을 하나 더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저것’이 크게 보인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무토(戊土)인 이 여성의 사주에는 재물(財物)에 한계가 있었다.

    올해 임진(壬辰)년까지의 운은 좋지만, 내년 계사(癸巳)년 운세가 좋지 않은지라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무토는 천간글자인 계(癸)를 만나면 합(合)을 하여 묶이게 되는데, 이때는 추진력이 떨어지고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있는 식당만 잘 꾸려 나가면서 편하게 지내는 게 낫겠다”는 말에 안색이 변하면서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뒷모습을 보면서 ‘1년 안에 다시 오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인간은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을 버려두고 저것만 쳐다본다.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다 갖지 못해 애태운다.

    이 욕망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부자란 스스로 자신의 재물이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성에 차지 않아 부족하게 여긴다면 그는 부자가 아니다.

    비록 가난해도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부자다.

    그러므로 부자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 재물의 다과에 달린 것이 아니다.

    태과불급(太過不及)이라고,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한 것만도 못한 것인데 이 여성은 자신의 그릇은 재보고도 무시하려고 든다.

    신강한 사주가 늘 그렇듯이 재어보러 왔으면 나쁜 이야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해도 된다’는 말만 들으려고 왔으니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 후 1년이 지난 올해 계사년, 풀 죽은 모습의 그녀와 마주 앉았다.


    역학연구가·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 263-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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