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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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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성적 소수자, 그들은 나와 다를 뿐이다- 허영희(한국국제대 교수)

소수인의 성 정체성, 다수인의 잣대로 상처주고 평가하지 말아야

  • 기사입력 : 2013-09-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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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전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의 초청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대학생 600명을 대상으로 ‘차이와 다름의 이해’라는 제목에, ‘성적 소수자의 인권,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아 90분간 강연을 했다. 필자는 강연을 할 때 수강생들에게 종종 질문을 던지곤 한다. 강의 초반부에 마음열기를 할 겸 눈에 띄는 앞 좌석의 한 건장한 남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반응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당연히 나와야 하는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순간 주변의 학생들이 한바탕 소란스럽게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 때문에 강연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고, 그 분위기에 편승해 열변을 토했다. 40분쯤 지나 또 다른 질문을 같은 학생에게 던졌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답변을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게 아닌가? 순간 주변 학생들의 웃음이 또 터져 나왔다. 강연을 끝내고, 강의를 요청한 학생처장의 티타임 요구에 자리를 옮겼다. 강연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교육 목표를 잘 달성했다는 나름의 자평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학생 세 명이 잰걸음으로 필자를 불러 세웠다. 순간 그 학생들의 얼굴이 심상찮아 보여, 무슨 상담할 일이 있나 싶어서 무엇이든 말하라고 했더니, “교수님, 좀 전에 질문 받았던 학생은 남학생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그 학생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보통의 경우 성전환자(트랜스젠더)는 변환된 성의 모습을 하기 마련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들은 여성의 모습과 징후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 학생은 달랐다. 순간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질문을 받는 순간, 그리고 주변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그녀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그것도 두 번이나 남성에게만 던져야 하는 질문을 받았으니, 그때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나는 의도하지 않게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 사건 이후 필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또한 성별화된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

    9월 7일 서울 청계천에서 결혼식을 올릴 한 동성커플이 며칠 전 국회 앞에서 성 소수자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이날 시위에는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 성적 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 성전환자 성별 변경 관련법 제정 등의 요구가 있었다.

    성적 소수자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을 포함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용기 내어 커밍아웃을 한 사람에게 달리는 인터넷상의 악플과 직장에서의 외면은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성전환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아간다.

    성적 소수자들의 결혼과 가족 구성, 각종 사회보장서비스를 이성애자들의 그것과 차별없이 보장하는 소위 ‘인권선진국’의 역사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물꼬가 트고 있다. 차별과 편견, 유유상종의 문화가 고질병처럼 남아 있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우리 사회에서 향후 펼쳐질 성적 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 외에도 다양한 성이 존재한다. 성적 소수자들은 우리 대다수의 성 정체성과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고, ‘틀린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수적으로 소수인 그들의 성 정체성을 다수인의 잣대를 가지고 ‘틀리다’ 혹은 ‘나쁘다’고 평가하면서 모욕감과 혐오감을 표출하고, 변태적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찬반양론에서 대국민적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겠지만, 상처 없이 쓰여지는 역사가 됐으면 좋겠다.

    허영희(한국국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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