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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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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62) 김승강 시인이 자전거를 타고 간 ‘창원 용추계곡’

용추교를 지나 돌탑이 있었다
거기, 한 사내의 울음이 있었다

  • 기사입력 : 2013-09-10 11:00:00
  •   

  • 절벽 중간에 여기저기 쌓여있는 돌무더기.
     
    용동저수지.
    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에 있는 용추정.
    용추9교.
    계곡 끝에 있는 포곡정.


    김승강 시인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판에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를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십시오 -릴케의 ‘가을날’ 부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카피가 있었던가. 지난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지난여름 우리가 다녀왔던 것은 피서였을 뿐이다. 전쟁을 피하듯 더위를 잠시 피했던 것이다. 때가 되었다. 지난여름 우리가 견뎌냈던 무더위가 악명 높았던 만큼 참으로 위대했다면 이제 우리는 저 광고카피가 명령하듯이 떠나야 한다. 들판에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살찐 말처럼 엉덩이를 한껏 치켜들고 있다. 거친 호흡을 억누르면서 자신을 올라타 힘껏 박차를 가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는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의 실체다. 자전거는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남성성을 표상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는 사이클 선수를 상상해보라. 터질 듯한 허벅지 근육은 방금 먼 길을 달려온 경주마의 그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지구의 대기층을 뚫고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의 심장을 갖고 싶은 것이다. 또 자전거는 내 안의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 한껏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는 자전거를 보면 바로 올라타고 바람처럼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이 밤이 지나면 떠나리라.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밤이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을 본다. 1948년에 만든 흑백영화다. 이 영화는 2011년에 영화비평가 및 감독이 선정한 세계 10대 영화에 들었고 2012년에는 세계의 위대한 영화 50 중 33위에 랭크된 영화다. 소문대로 잘 만든 영화다. 내 머릿속에는 흑백의 이미지들이 있다. 물론 내 나이쯤만 되어도 누구나 그렇듯이 그 흑백의 이미지들 중에는 ‘자전거 도둑’에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와 자전거’의 이미지도 있다. ‘자전거와 도둑’은 머릿속에 흑백의 이미지들을 가진 이들이 그 흑백의 이미지들을 꺼내 보게 하는 영화였다.

    고백하건대, 나도 자전거 도둑이 될 뻔한 적이 있다. 십대 초반이었다. 어느 날 ‘자전거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자전거는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는 집 안에 세워져 있었다. 그 집은 항상 대문이 열려 있었고 그 열린 대문 안에 그 자전거가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그 자전거에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에서 강한 어떤 충동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난 그 충동이 불온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내 이성은 그 충동을 억누르기에는 너무 나약했다. 새벽이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그 집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결론을 말하면, 나는 자전거 도둑이 될 수 없었다. 그때 그 충동이 충족되지 않아서인지 지금도 나는 자전거만 보면 마음이 설렌다. 지금도 그날 내 안으로 들어온 자전거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때 자전거 도둑이 되었다 해도 지금 나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자전거 도둑’이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자전거 도둑’에는 도둑은 없고 용서가 있었다. 그때 만일 내가 자전거 도둑이었다 해도 나는 자전거 도둑인 나를 벌써 용서했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자전거 도둑처럼 시작된다.

    새벽이다. 잠에서 깨어나 간단히 몸을 풀고 자전거에 오른다. 자전거는 내가 살고 있는 집 뒤 용추계곡을 향해 내달린다. 오늘이 아니어도 나는 매일 새벽 용추계곡을 오른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하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그 돌탑’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 돌탑’은 사람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한때 내가 쌓던 탑이다. 문득 흔적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졌다.

    여기로 이사와 주위의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즈음 나는 이곳에는 저수지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확인하기로는, 지금은 없어진 것을 포함하여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1㎞ 내에 총 여섯 개의 크고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나는 매일 새벽 자전거를 타고 여섯 개의 저수지를 순례(?)했다. 용추계곡 밑에는 이 여섯 개의 저수지 중 가장 큰 두 저수지인 용추저수지와 용동저수지가 있다. 이 두 저수지는 마치 쌍둥이처럼 가까이 있다. 쌍둥이보다는 형제 또는 자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용동저수지가 용추저수지보다 약간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작지 않은 저수지가 가까이 두 개씩이나 있다는 것은 용추계곡의 깊이를 말해준다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두 저수지가 거느렸던 들이 얼마나 드넓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계곡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왼쪽이 용추저수지고 오른쪽이 용동저수지다. 용추저수지가 용동저수지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용추저수지는 현재 반토막이 나 뒷방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용추저수지의 반 이상을 매립하고 그 위에 역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창원중앙역이다. 새벽이 아니어도 여름이면 나는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창원중앙역을 찾곤 한다. 시원하기 때문이다. 저수지가 있던 자리라 그런지 바람이 잘 들고 난다. 또 밤에 역에서 내려다보는 창원야경도 볼 만하다. 두 저수지를 지나 시멘트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안내소를 지나면 계곡을 옆으로 끼고 편평한 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 철제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계곡이 시작된다.

    철제다리를 건너기 전에 자전거와 헤어져야 한다. 자전거에 시건장치를 건다. 내 안에 자전거 도둑이 있듯이 내 밖에도 자전거 도둑이 있다. 가물어서 그런지 물이 많지 않다. 계곡은 모름지기 물이 많아야 계곡답다. 아쉽다. 용추정이 길옆으로 비껴서 있다. 용추계곡에는 두 개의 정자가 있다. 나머지 하나는 계곡 끝에 있는 포곡정이다. 두 정자 사이에는 용추교 1에서 11까지 11개의 목재다리가 있고 그 사이 출렁다리가 하나 있다. 용추계곡에는 13개의 다리가 있는 셈이다.

    용추교들은 마치 영화세트장의 미니어처 같이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 물이 없으니 벌린 다리를 내려놓아도 되겠다 싶다. 나는 다리를 건너 ‘저쪽’에 있는 너에게로 간다. ‘저쪽’으로 갔다고 생각했던 너는 내가 ‘이쪽’으로 건너오는 순간 ‘저쪽’이 된다. 다리는 또 나타난다. ‘저쪽’에 있는 너는 ‘이쪽’에 있는 나에게로 올 수 없고 ‘이쪽’에 있는 나는 ‘저쪽’에 있는 너에게로 갈 수 없다. 오, ‘이쪽’과 ‘저쪽’을 갈라놓는 계곡이여! 죽음이여!





    하나

    얹고빌

    었다돌하

    나얹고빌었

    다돌하나얹고

    빌었다돌하나얹

    고빌었다돌하나얹

    고빌었다돌하나얹고

    빌었다돌하나얹고울었다



    - 졸시 ‘돌탑’



    ‘그 탑’은 용추교 7을 조금 지나 있다. 계곡을 계속 오르려면 용추교 7은 건너서는 안 된다. 용추교 7은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벗어나 있는데, 건너면 비음산에서 봉림산을 잇는 산등성으로 합류할 수 있다. 용추교 7을 비껴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다 고개를 들어보면 오른쪽으로 큰 바위절벽이 나타난다. 나는 이 바위절벽의 내 키높이에 있는 편평한 곳에 엄지손가락만 한 돌을 지날 때마다 얹어놓고는 했는데, 그걸 나는 탑을 쌓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너’는 투병 중이었고 ‘나’는 기도 중이었다. 탑은 없었다. 탑은 없고 돌무더기가 있었다. 내가 쌓은 돌들 옆으로 다른 돌들이 놓여 내가 쌓은 탑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탑은 있었다.

    탑은 쌓는 게 아니었다. 탑은 쌓이는 것이었다. 처음에 한 울음이 있었다. 그 울음 위로 돌을 하나 얹는 손길이 있었다. 또 하나의 돌이 그 돌 위에 얹혔다. 돌은 그렇게 쌓이고 쌓였다. 그리하여 돌탑이 되었다. 돌무더기일지언정.

    거기 돌탑이 있었다. 거기 한 사내의 울음이 있었다.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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