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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이전 30년, 그 궤적을 스치는 씁쓸한 단상-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3-09-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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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본지에 ‘경남도청 이전 30년 비사’가 실렸다. 비사를 읽으면서 인근에 두고도 무심히 지나쳤던 도청의 존재를 새삼 떠올렸다. 그저 그러려니 했던 도청의 하얀 외벽은 재정난으로 허덕이던 그 시절 그 어려운 현실이 잔영처럼 배어 있음을 알게 됐다.

    도청을 푸르게 장식하고 있는 본관 뒤편의 송림원은 관내에서 제일 좋은 소나무 정원수 1그루씩을 기념 식수토록 지시받은 220개 읍·면의 땀이 깃들여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무심히 지나쳤던 정원수와 밋밋한 화이트 톤의 도청건물 벽면에도 이런 에피소드가 숨어 있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역사의 현장에는 항상 숫자가 있었다. 70년대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삼은 기업들은 수출목표액이라는 숫자에 사운을 걸었다. 그들에게 숫자는 영욕의 바로미터였다. 흔히들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도 이런 숫자에 민감하다.

    특히 0으로 끝나는 숫자에 열광한다. 역사적 사건의 원년에는 성대한 시작행사를 갖고 매 10년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역사로 등록되는 영광과 오욕의 찰나를 영원히 기념하려 한다. 물론 역사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자는 의미도 갖고 있다. 통치술은 이런 숫자에 인간만의 영혼을 부여하기도 한다. 역사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일 때마다 인생의 나이를 접목시키는 기법, 소위 ‘역사 의인화’ 작업이다.

    이런 전제를 두고 경남도청으로 눈을 돌려보자. 도로명 주소 ‘창원시 의창구 중앙대로 300’에 있는 경남도청이 지난 7월 1일로 개청 30주년을 맞았다. 일제 치하였던 1925년 4월 1일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은 부산으로 옮겨갔다. 1963년 1월 1일 부산시가 정부직할시로 승격되면서 20년6개월 세월 동안 더부살이를 하다 1983년 창원으로 이전한 것이 도청이전 약사(略史)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부산직할시가 출범한 것과 동시에 나타난 도청환원운동이다. 당연히 예전 도청이 있었던 진주를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가 높아졌다. 때맞춰 마산은 경남의 중심도시라는 명분을 내세워 도청 마산유치운동을 벌였다. 같은 도청을 두고 같은 지역의 소지역이 내세우는 명분은 달랐다. ‘환원’과 ‘유치’의 이름을 건 대립이다. 결국 도청 이전지는 1981년 진주도 마산도 아닌 창원신도시로 결정되는 곡절을 겪게 된다. 도청을 두고 설전을 벌였던 진주와 마산시민들이 허탈했으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쨌든 다시 경남으로 돌아온 도청의 연륜이 이립 (而立)이다. 이립은 공자가 삼십 세에 자립하였다는 데 기원을 두고 있는 말이다. 역사의 의인화작업을 접목하자면 성년으로 자립하는 시기다. 역사를 논하는 이들이 즐겨 쓰는 ‘0의 셈법’이 적용되는 해도 바로 올해다. 그런 이립의 경지에서 0으로 끝나는 올해 7월, 경남도청의 생일에는 어떤 특별한 행사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자 두 가지 가설이 떠오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도청이전을 둘러싼 구 창원과 마산 간의 갈등, 지역 간 갈등을 의식해 도청이전 홍보를 도청 스스로 포기했을 수도 있고, 도청이전이 갖는 ‘역사의 무게’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자에 상정한 가설이 실체라면 ‘당당한 도정’을 표방하는 현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다. 갈등 해소의 주역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요소에 대해 애써 눈길을 피하려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당시 환원을 둘러싼 갈등이야 어쨌든, 지금의 도청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얼마나 미묘하든, 도청이 환원 30년을 맞은 시점이라는 중한 역사성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혹여 두 번째 가정이 사실이라면 도청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꼴이 된다. 당시 도청을 창원으로 이전할 때 내건 명분은 도민의 긍지와 편익을 증진하고 도정 능률을 제고하며, 균형 있는 지역개발을 촉진해 일체감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지역 간 도시 수준의 격차가 심화하고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의 요소들이 수면에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시점이니 0의 셈법이라도 적용해 지역갈등의 고리를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든다. 도청이전 30년의 궤적을 스쳐 가는 씁쓸한 단상이다.

    허충호(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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