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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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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무언불수(無言不)- 대답하지 않는 말이란 없다

  • 기사입력 : 2013-09-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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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의 고향에서 근무하는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필자가 지은 책에 대해서 전해 듣고는 책을 한 권 부쳐달라고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그 책은 지은 지 오래돼 몇 권 남지 않은 데다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찾으려면, 그 앞에 쌓인 책이나 물건을 들어내는 등 상당한 작업을 해야 꺼낼 수 있었다.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급한 일이 계속 생겨 작업을 할 틈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미뤘는데, 그동안에도 책을 보내달라고 그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아침저녁으로 전화가 왔다. 나중에는 다른 교수에게까지 전화를 해서 “책 빨리 좀 보내주게 허 교수님께 부탁해 주십시오”라는 전화까지 했다. 책을 사랑하는 그분의 열정이 존경스럽고, 또 보잘것없는 필자의 책 한 권 얻으려고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는가 싶어 한편으로 기분이 괜찮았다.

    한 보름 지나 “늦어서 미안합니다. 보잘것없는 책 보시고 많은 지적을 바랍니다”라는 요지의 편지를 넣어서 책을 부쳐 보냈다. 그러나 답장은커녕 전화 한 통 없었다.

    필자가 중국 있을 때 한 유학생이 있었는데, 북경의 우리 집에도 자주 찾아오고 해서 상당히 가까워졌다. 그 뒤 주례를 부탁해 서게 되었다. 결혼식 장소가 필자가 사는 진주와는 상당히 먼 도시였다. 결혼하는 그 학생은 필자가 혹시 주례하는 사실을 잊어버릴까 걱정됐는지 수시로 전화를 했고,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도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그러나 결혼식 주례를 마친 이후로는 “잘 가십시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의 한국한문학사(韓國漢文學史)를 중국어로 번역해 전국 각 대학 한문학과, 국문학과, 중문학과 교수와 대학도서관, 학술연구기관에 보냈지만, 받았다고 답장이나 전화라도 하는 사람은 열에 한 사람도 안 됐다.

    학회 같은데 원고를 제출하고 나면, 간사나 총무 등이 간단하게 “원고 잘 받았습니다”라고 이메일이나 문자로 답을 하는 것이 옳다. 원고를 잘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중에 못 받은 경우도 있고, 잘 처리됐을 줄 알고 있는데, 안 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옛날 선비들 사이에는 편지를 보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답장을 안 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돼 절교(絶交)까지 갔다. 부모상을 당했거나 급한 병이 걸리지 않는 한, 남의 편지에 답장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도리였다. 보낸 사람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특히 물건 같은 것은 도착했는지 확인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정보통신이 발달해 주로 스마트폰이나 카카오톡이 주된 정보 교환수단인데, 기구가 달라졌지만 통신에 대한 예절은 마찬가지다. 남의 전화나 문자를 받았으면 반드시 답을 해줘야 한다.

    시경(詩經)의 ‘억(抑)’이란 시에 ‘대답하지 않는 말이 없고, 갚지 않는 덕이 없다.(無言, 無德不報)’라는 말이 있다. 남의 말에는 답을 해야 하고, 남의 은혜를 입었으면 갚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처신하는 기본이다.

    기본이 안 된 사람이 더 큰일, 더 훌륭한 일을 할 수가 없다. 기본이 잘된 처신을 잘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는 방법이고, 복을 받는 길이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일회용 물건처럼 취급하면, 그 다음에 그 피해가 바로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

    * 無 : 없을 무. * 言 : 말씀 언. * 不 : 아니 불. * (●讐) : 원수 수. 갚을 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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