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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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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길로 소통하다- 천득염(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경주와 이스탄불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 개척해 ‘소통의 길’ 열자

  • 기사입력 : 2013-09-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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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참으로 많은 길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당시 로마가 세계 최강국이었기 때문에 모든 인적 물적자원이 중심인 로마에 있고 이들이 서로 지역을 달리하여 쉽게 통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로마의 길은 원래 군사적이고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제국의 이해와 권위에 반하는 경우 신속하게 군사를 이동시켜 이를 굴복시키는 것은 석재로 잘 포장된 도로였기에 가능했다. 이 길이 결국 상업을 위한 길이 되고 사람들이 많이 소통되자 자연스럽게 로마식 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로마식 도로는 가까이에 있는 그리스는 말할 필요 없이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까지도 이어졌다. 밑에는 조그마한 돌로 다지고 그 위에 납작한 돌을 깔았고 옆에는 하수구도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흔히 비단길이라고 부르는 실크로드는 고대에 비단무역을 계기로 하여 중국과 서역 각국을 이어준 육해교통로를 말한다. 총길이 6400㎞에 이르는 이 길은 중국 중원지방에서 시작하여 하서회랑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변을 따라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초원, 이란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른다. 말이 실크로드이지 목숨을 건 머나먼 행로였다. 이 길은 처음에는 전쟁을 위한 길이고 문물을 거래하는 길이며 종교적으로는 포교의 길이 됐다.

    실크로드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전한(前漢·기원전 206~기원후 25) 때이다. 한무제는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장건을 중앙아시아에 파견했는데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 및 지중해의 동편에 이르는 서방 각지와 문물이 왕래하게 된 것이다. 삼장법사로 잘 알려진 현장은 7세기 초반에 인도를 17년간 다녀와 대당서역기라는 인도기행문을 썼고 많은 불교 경전을 한자로 번역했다.

    우리에겐 어떤 길이 있었을까? 요즘 경주에서는 문화엑스포의 일환으로 경주와 이스탄불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해양 실크로드라 하여 역시 일본까지 잇고 있다. 8세기의 신라승려 혜초는 요즘의 인도인 천축을 다녀와서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행문을 썼다. 파미르고원을 넘고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40여 개국을 돌아보고 기록한 것이다.

    한반도 서측의 해안에 형성된 고대 해양로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길은 가장 활발한 문물의 교통로였다. 고대에는 육지에 가까운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중국에서 한국에까지 2주 정도 걸렸다 한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조류와 풍향에 따라 2, 3일 이내에 도달하기도 했다. 신안 해저에서 발견된 배에서 수많은 송대 도자기가 실려 있어서 많은 상선이 드나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서 왜군이 부산에 다다른 20여 일 만에 한성이 함락됐다. 오랜 평화를 믿고 이율곡의 십만 양병론 등을 무시하며 전쟁 준비를 게을리한 탓도 있지만 당쟁에 국력이 쇠진해졌으며 세계와의 소통에 소홀한 까닭에 당한 굴욕이었다. 조선시대 각지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서울로 가는 선비는 얼마나 걸렸을까? 걸어서 열심히 가노라면 약 2주면 족하지 않았을까?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번길은 이제 추억의 길이 됐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설되었으니 그 역할을 내준 셈이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고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여행을 하고 싶다. 언젠가는 통할 길이다.

    요즘 사회의 여러 현상이 모두 막혀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막힘은 단절이요 이어져 뚫림은 소통인데 어찌 모두 닫고 살려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홀로 있지 않고 남과 연계 속에서 소통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가치가 서로 이어져야 더 높은 가치를 낳는 것이다. 정치는 대화가 중지되었고 경제는 선순환이 되지 않아 계층간에 갈등이 심하니 국민의 삶이 갈수록 어렵다. 국민들의 얼굴이 근엄하고 웃음이 적은 것도 소통이 잘되지 않음일 것이다. 소통으로 길을 열 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천득염(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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