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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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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웃어라! 냉장고- 최미선(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3-09-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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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그 어느 해보다 더 투명하고 밝은 달빛이다. 지난여름의 그 혹독한 무더위와 가뭄을 보내고 맞은 한가위라 더 산뜻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유례없었던 폭염에다 대정전 사태에 대비한 절전으로 쉽지 않은 여름이었던 탓에 밤하늘을 가르는 추석 보름달은 더 없이 삽상하다.

    태곳적부터 유유히 흘러온 달빛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한가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은 사뭇 달라지고 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달빛이 비쳐드는 마루에 둘러앉았는데, 대화 내용은 신종병기 전자기기에 쏠려 있다. 스마트폰이나 전자패드를 펴놓고 화려한 사용법을 시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현명하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들이 펼쳐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각종 전자기기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신종 병기임이 확실하다. 그 때문에 우리의 생활방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속도에 밀려서 혹은 편리함에 밀려서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혹은 잃게 될까 봐 걱정이다. 그 한 예가 초등학교 교실에 종이 책 대신 전자패드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종이 책 없이 글을 읽는 것이고, 공책 없이 공부하게 된다는 뜻이다. 무거운 책가방에서 자유이지만, 종이로 된 교과서가 없는, 황무지와 같은 교실을 상상하면서 우려가 앞서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새 학년, 새 학기에 빳빳하고 정갈한 새 책을 받고 좋아했던 추억 때문에서일까? 그런 오래된 기억을 고집하고 싶은 것이 이유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이란, 무릇 공부를 하는 것이란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온 감각이 동원되어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독서란 오감을 통해 누리는 만족감이라는 사실은 교육전문가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문에 닿는 종이의 식물성 느낌, 책장을 넘길 때의 섬유질의 섬세한 소리, 종이의 원재료가 되는 식물의 안정감, 이런 모든 것들이 책읽기를 자극하는 것이고, 책에 몰입하게 해주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종이 위에 박혀있는 활자에 몰입해 밤이 새는 줄도 몰랐던 그 행복한 기억들이 유전되지 못하는 유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낭패감이다. 전자기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도 여전히 종이 신문을 읽는 이유는 오감을 통해 누리는 글 읽기의 맛이며, 많은 책들이 e-book 형식으로 출간되어 출판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굳이 종이로 된 책을 사서 그 질감을 누리며 글을 읽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자기기 발달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단절이 아닐까. 이런 우려는 바로 지금도 목전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친구들과 만나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려온다. 신종기기의 진화의 끝이 점점 더 암담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에 들은 외신 하나가 위안이 된다. 도쿄 대학 연구소에서 일본 S사와 공동기획으로 만들어낸 냉장고가 그 예이다. 이 냉장고에는 웃는 얼굴을 감지하는 센스가 있어서 웃어야만 문이 열리는 냉장고라고 한다. 웃지 않으면 냉장고 문을 열 수 없게 된 것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냉장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핵가족화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안에서도 웃을 일을 만들어주는 친절한 냉장고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가구와 감정을 교류해야하는 현상이 더 심화되기 전에 사람과의 대화를 더 늘려야 할 것이다.

    초가을 달빛은 여전히 투명하고, 밤하늘 풍경은 여전히 상쾌하다. 동네 어딘가에서 한가위맞이 마을 노래자랑이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추어의 서툰 노랫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박자도 발음도 모두 한결같이 어색하고 서툴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한다. 이런 근대적 풍경은 아직도 우리 삶의 주변을 맴돌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미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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