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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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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자기소개서 쓰는 시간- 박영희(소설가)

  • 기사입력 : 2013-10-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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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은 그 천 근 같은 입시라는 무게에 눌려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집도 올해 입시생인 고3 딸아이 때문에 분위기가 싸늘하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있겠지만 여름 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자기소개서에 대한 구상을 한다고 고심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은 좀 봐준 적이 있어 아는 척해 볼 심사로 “쓴 거 내가 한 번 봐줄까” 하고 슬쩍 운을 떼니 ‘자기소개서를 엄마가 왜?’ 하는 포즈를 짓는다. 그래도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엄마가 좀 보며 첨삭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은 게 대한민국 모든 고3 엄마들의 마음일 것이다. 거절하는 게 좀 얄밉기는 하지만 혼자 해보겠다는 고3의 심기 건드려 뭐 좋을 게 있나 싶어 모른 척했었다.

    명절 뒤끝 딸아이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들 자기소개서가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간단했지만 내용은 63빌딩 무게였다.

    ‘그 많은 빈칸을 다 채울 스토리가 없어요.’

    세상에 쓸 게 없다니, 19년 동안 살면서 자신에 대한 스토리가 하나도 없다는 게 그게 인생이니, 싶어지다가 왜 쓸 게 없냐고 되물었다. 학교에서 집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기에도 숨차단다. 그러니 공부밖에 모르는 평범한 집안에 평범한 성적의 우리는 어떻게 어디 가서 그 많은 스토리와 스펙을 쌓느냐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전설의 고향보다 섬뜩한 한 서린 푸념을 한 바가지씩 늘어놓는다. 듣고 보니 당연하고도 지당한 말씀이다.

    이게 우리나라 입시생들의 또 다른 고민이구나 싶어졌다. 수능과 내신·특별전형과 논구술도 만만찮은데 6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수시전략과 자기소개서까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고3에게 자신의 앞날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성찰할 수 있는 에세이를 요구하는 게 잘못된 발상인가?

    대략 난감이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남이 대신 써줄 수도 없고 무슨 사이트에 가면 돈만 주면 누가 대신 써준다는 데가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누가 대신 알 수 있을까 그건 오로지 본인만이 알고 쓸 수 있는 일이다. 그게 더 한심하고 지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진다.

    부모님과 학교선생님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학에서 요구하는 항목을 채우기에는 사실 너무 부족하다. 그 사실을 대학 측에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봉사활동이나 취미활동은 꿈꿔보지도 못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에서 어떻게 자신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가 나올 수 있을까. 짧은 몇 줄도 힘들게 써내려가는 아이들이 대다수다.

    성적에 맞춰서 가는 대학이 아닌, 학교 이름 보고 선택하는 대학이 아닌, 정말로 자신이 전공하고 싶고 공부해 보고 싶은 직업과 연관되는 학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고등학교 기간에 있었으면 하는 게 학부모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방에 사는 학생들은 입시정보를 고작 선생님이나 부모님, 선배들을 통해서다. 수도권 아이들과 같은 입시설명회가 부족하다 보니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다. 그냥 성적에 맞춰가는 게 전부다. 신화 속의 시시포스의 돌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입시제도에 반항 한 번 못하고 견뎌내며 부조리한 이 지겨운 반복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입시생들의 현실이다.

    그 무거운 입시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대안은 진정 없을까? 이 땅에 태어난 게 원죄라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 책임감 없지 않은가.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지금의 작태로 봐서는 10년이 아닌 1년 단위로 바뀌는 정책에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계속 내버려두어도 되는지, 그러고도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 반문만 할 뿐이다.

    딸아이가 몇 달을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소개서를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다. 몰래 한 번 들여다보고 한마디 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되나 이게 요즘의 나의 고민이다.

    내가 만일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 막상 펜을 드니 막막하다. 왜 쓸 게 없느냐고 딸아이에게 폭풍잔소리를 해대었든 나였는데 이런 낭패가 어디 있을까? 대한민국 고3의 심정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박영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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