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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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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② 마누가 머무는 곳, 마날리(Manali)

가락국 로맨스의 징표 ‘물고기 문양’은 이곳서 잉태되었네
마날리는 힌두어로 ‘마누가 머무는 곳’ 뜻해
Asia Forever Romance Road

  • 기사입력 : 2013-10-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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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마날리의 바쉬쉿 마을 입구에는 나무와 돌로 만든 전형적인 히마찰 사원이 있다. 사원 안에는 무료 노천탕도 구비돼 있어 여행객들이 피로를 풀 수 있다. 단돈 2루피(400원 정도)를 주면 신발과 옷을 보관해준다.
    바쉬쉿 마을은 온천으로 유명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우물터처럼 온천수조가 만들어져 마을 공동 빨래터로 이용된다.
    마날리 어느 곳에서든 양떼를 모는 유목민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마날리 외곽 초원 ‘구자르’라는 유목민들의 천막과 양들이 평화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인도 아요디아로 향하기로 하고 짐을 꾸렸다.

    아요디아는 김수로왕비가 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신행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로 된 대서사시 ‘라마야냐(라마의 여정)’의 배경이 된 곳이고 코살라왕국의 초기 수도였던 곳이다.

    힌두교 7성지의 하나임에도 무슬림과 힌두인의 오랜 분쟁으로 세계의 최고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도 여행을 자제시킨 곳이다.

    검색어를 두드려 봤다. 힌두와 무슬림의 사원을 둘러싼 분쟁으로 관련된 기사만이 나열돼 있다. 여행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심리적인 부담은 출발 전까지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몇 년 전 남부 인도를 여행할 때 커피농장에서 내게 친절을 베풀던 아프리칸 인디언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났다. “하쿠나 마타타(걱정거리가 없다!).”


    난 힘겨운 여행을 하던 바로 그때 일을 생각하고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리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 그 정해진 삶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신의 섭리이자 나의 인생이다’는 이 짧은 글 속에 인도인들의 가치관이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그들의 가치관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보기로 했다. 자연에 순응하듯이, 내 것은 잠시 내 손을 거쳐 지나가는 것이고 네 것도 잠시 내 손으로 거쳐 갈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렇게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았다.

    비행기는 델리국제공항에 가볍게 나를 떨궈 놓았다. 나는 델리에서 차량을 빌려 인도 서북쪽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주 마날리(Manali)로 향하기로 했다.

    마날리는 힌두어로 ‘마누가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인류 최초의 조상이라 믿는 마누(Manu)가 물고기의 힘을 얻어 인류를 구원했다는 신화가 있는 곳이다. 마누(Manu)는 인류의 조상으로 신들에게 최초의 희생을 바친 사람으로 마누법전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태양신의 아들로 어느 날 강에서 작은 물고기를 만난다. 물고기는 마누에게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고 마누는 그 물고기를 집에서 키우다가 바다로 돌려 보낸다. 물고기는 마누에게 곧 대홍수가 도래하고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니 거대한 배를 만들어 온갖 생물의 종자를 배에 싣고 대홍수에 대비하라고 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물고기의 예언대로 대홍수가 발생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이 떠내려갔다. 그때 거대한 물고기로 변한 물고기는 마누 앞에 다시 나타나 마누가 만든 선박을 산꼭대기에 밀어올리고 물이 빠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게 하여 마누를 구했다. 신령스런 물고기의 도움으로 마누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최초의 인류를 탄생시킨다.

    나는 신령스런 물고기 이야기에 호기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Asia Forever Romance Road’의 주요 루트가 되고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 신령스런 물고기 문양은 2000년 전 아요디아에서 가야로 온 허황옥 공주의 발자취를 따라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김해 수로왕릉의 정문에도 그 문양이 새겨져 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밤 10시 델리를 출발했다. 마날리로 향하는 차는 델리 시내를 벗어나 먼 외곽으로 빠졌는데도 날이 흐린 탓에 밤하늘엔 달도 별빛도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오전 10시가 훌쩍 넘었고, 하늘도 푸르게 열려 있었다.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듬성듬성 물고기가 유영하듯 하얀 뭉게구름도 산허리를 날고 있었다. 시야의 끝에서는 히말라야 설산이 가물거린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마날리다.

    히말라야의 초입에서 만난 마날리의 작은 마을 바쉬쉿은 유황온천으로 유명하다. 라닥 여행자들이 머무는 거리에는 갖은 기념품으로 채워진 작은 가게들이 이어졌다. 곳곳에 파스텔색 옷을 입은 현지 여인들의 걸음에서 마날리의 정감이 묻어났다.

    전통 산간 마을을 형성한 나무집도 그들의 유채색 옷 빛깔을 닮아 아름다웠다. 그들의 생김새는 여타 다른 지방의 인도인과는 달리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 지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불가리아 산간지방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 다른 어느 인도보다 더욱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차를 세운 마을 어귀 우물터에는 온천수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커다란 수조에 받아 놓은 온천탕에서 현지인들은 거리낌 없이 사타구니가 다 드러나는 짧은 팬티만을 입고 물놀이를 즐겼다. 그 아래로 흐르는 온천수는 마을 공동 빨래터로 사용되고 있었다.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이 물러나면 남정네들은 마을 공동 주방 식기를 세척하는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여장을 풀고 아침부터 두 마리의 물고기 문양을 보거나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요량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한나절을 걸었다. 사원을 둘러보고 기웃거려 보았지만 눈에 띄는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신령스런 물고기의 신화를 믿었다. 그들은 마날리가 신령스런 물고기의 도움을 받은 마누에 의해서 생겨난 곳이고 아직도 그가 머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비가 멈추고 마날리에 관한 신화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언덕에 올라서 보니 실제로 마날리는 노아의 방주처럼 커다란 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누가 머무는 곳, 마날리의 파스텔색 목조 농가들은 숲길 사이 사이에 지어졌고 마날리의 특산물인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지나는 이의 손길을 유혹했다. 한나절 걷는 동안 마날리의 날씨는 수시로 바뀌었다.

    어느새 밤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을 바라보면서 테라스에 앉아 있는데 아래층에서 비에 흠뻑 젖은 금발의 여인이 자기 몸집만한 배낭을 둘러메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왔다. 비어 있던 옆방 투숙객인 듯 보였다. 그녀는 내 앞을 지나며 눈인사를 보낸다. “줄레! 줄레!”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알 수 없는 인사말을 했다. 주섬주섬 젖은 옷을 털어내면서, 문고리를 잡고 테라스에 앉은 내게 이것저것 묻는다. ‘어디서 왔냐’는 여행자들이 하는 첫마디이다. 그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파리에서 온 여인이다. 라닥 여행을 마치고 왔단다. 보안상태 등 혼자 여행하는 데 우려가 될 만한 것들에 대해 질문한다. 내 대답에 안도감을 느낀 그녀가 물었다.

    “알렉스, 줄레! 줄레! 알아요? 라닥 사람들이 ‘나마스테’처럼 쓰는 인사말이죠.”

    그녀는 부연 설명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모든 게 잘될 겁니다. 신이 함께할 겁니다. 당신에게 행운이….”

    “알렉스!” 그녀는 다시 미소 띤 채 살짝 취기가 도는 나를 보며 말했다.

    “라닥 사람들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두 손을 모으고 말합니다. ‘나마스테’처럼.”

    처음 듣는 인사말이었다. 그녀는 피곤했는지 이내 내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사라졌다. “줄레! 줄레!”

    아침이 됐다. 테라스에 새 두 마리가 내 곁에서 노닐더니 금세 한 마리는 날아가 버렸다. 나는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배낭을 꼭꼭 쌌다. 어제 마시다 내려놓은 술잔에 새 한 마리가 앉아 빈 술잔을 쪼아대고 있었다. 그녀와 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은데 그녀의 방문이 굳게 잠긴 듯하다. 아직 그녀는 깊은 잠을 자는 모양이다. 배낭을 짊어지고 문 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줄레! 줄레!”

    날아간 새 한 마리를 찾아 나서듯 말없이 마날리를 뒤로했다.

    글·사진= 남기환(사진작가·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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