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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김승강

  • 기사입력 : 2013-10-1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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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 진 강

    아버지

    술 취하시면

    이 세상이 천국입니다.

    아버지

    술 깨시면

    이 세상은 지옥입니다.

    먼 도시의 불빛처럼

    세상은 천국과 지옥으로 깜박입니다.

    형광등은 수없이 명멸하면서

    빛나는 거라지요.

    천국과 지옥의 나무 사이에

    강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명멸하는 빠르기로 쫓아가면

    나루와 나루 사이

    강이 한 줄기

    맑은 소줏빛으로 흐릅니다.

    - 시집 <흑백다방> 중에서



    ☞ 술 취하면 천국이고 술 깨면 지옥인 아버지가 있습니다. 취해서 천국을 만드는 아버지는 낭만적입니다. 남에게 시비를 거는 일도 없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술이란 힘든 삶을 잊게 해주는 더없는 묘약이 되겠지요. 현실도피인 듯하지만 그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시인도 더없는 애주가입니다. 강을 건너가면 천국이고 건너오면 지옥이라니, 강을 건너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마음 통하는 지인과 술잔 나누는 일은 기쁨입니다. 술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도사리고 있던 마음이 슬그머니 풀어져 속내를 주고받게 됩니다. 적당량의 술로써 천국에 들면 자신의 지하실에 갇혀 있던 마음이 훨씬 자유로워질 테니까요.

    ‘형광등은 수없이 명멸하면서 빛나’듯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깜박거림이 빠를수록 인생도 더 빛난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깜박거림의 속도를 쫓아갈 때 시인은 ‘맑은 소줏빛’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발견합니다. 디오니소스의 눈으로 보면, 술은 마치 거역할 수 없이 흐르는 자연의 이치처럼 느껴집니다. 묘하고도 특별한 술에 대한 찬가입니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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