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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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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축제와 휠체어- 김주경(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3-10-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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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큼 가을이 왔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이상기온으로 겨울과 여름이 길어지고 봄 가을이 점점 짧아진다는 안타까운 보도도 있었지만, 피부로 눈으로 입으로 충분히 느낄 만큼 가을은 기어이 왔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여름 동안 지치고 팍팍해진 몸과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듯 축제는 물론 공연이나 각종 전시회 등 대규모의 문화행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우리를 유혹한다.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가을의 감성을 빌미로 나도 마음이 끌리는 행사 몇 군데쯤은 다녀와야겠다.

    급격한 문명의 발달로 훼손된 생태계에 위협을 느껴서인지 자연친화적이라는 슬로건을 걸어둔 행사가 많은 것 같다. 지난봄에 다녀온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가장 잘 연결해준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도 함부로 뽑아버리거나 허투루 심지 않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관리를 한 노력으로 규모 면에서부터 행사 진행까지 빈틈이 없어 보였다. 하루에 수만 명씩 관람객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질서가 잡혀 있어 큰 혼잡 없이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서로 스며들듯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민첩하고 원활한 움직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봉사자들 중 대부분이 정년퇴임을 하신 연배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라는 것이다. 유니폼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부드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안내와 해설을 해주시는 모습들이 행사의 품위를 한층 높여주는 듯했다.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즘은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지닌 어르신들이 많다. 더구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오랜 경험이 바탕이 된 어르신들은 도우미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인적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여느 행사장처럼 평상복에 명찰이나 띠 같은 것만 두르고 계셨다면 느낌이 달랐을지 모르지만,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착용함으로써 봉사자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동시에 관람객들도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안내에 대해 신뢰도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넓은 박람회장 곳곳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관람객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정원박람회인 만큼 주로 야외에 조성된 각 나라의 정원을 둘러보는 것이라 관람코스가 최소 2시간에서 5시간 이상씩 됐다. 오랜만에 맘먹고 나온 터라 제일 긴 코스를 택해 관람지도를 따라 돌며 스탬프도 찍고 구석구석 찾아보는 깨알재미에 푹 빠졌지만 사실 5시간 이상 걷는다는 건 내게도 버거운 코스였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어린아이들은 쉽게 지쳐 관람을 포기하기 십상이었다. 처음 몇몇 휠체어를 보았을 땐 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박람회장 입구에서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휠체어를 대여해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보통 유모차를 대여해 주는 곳은 많이 봤지만 휠체어를 대여해 주는 곳은 잘 보지 못했다. 휠체어 덕분인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온 3세대 이상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도 많이 보였고, 넓은 행사장임에도 힘든 기색 없이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관람을 하고 있었다. 정원박람회는 자연이나 사람이 어느 곳에 어떠한 모습으로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해주는 감동이 있는 행사였다.

    지난여름 가까운 곳으로 어머니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갔다 오는 길에 이름난 사찰이 있어 들러보려고 매표소에 갔더니, 입구에서 사찰까지는 꽤 먼 길이어서 구순의 어머니가 걸어가기엔 힘들 거라며 만류를 하였다. 순천박람회에서 휠체어를 본 기억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의를 해보니 역시나 휠체어 같은 건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여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힘들게 다녀오긴 했지만 이런 사찰에도 휠체어 몇 대쯤 비치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아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도 유모차와 함께 휠체어 몇 대쯤 비치해 두면 좋지 않을까?

    김주경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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