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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정호승

  • 기사입력 : 2013-10-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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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 우리가 아무리 사랑의 고통을 호소한다 해도 연어만큼 고통을 겪진 않을 겁니다. 산란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슬러 오르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경외심을 안겨줍니다. 인간사회에서는 ‘멀리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멀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두려워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시대지요. ‘폭포를 뛰어’ 넘는 ‘고통이 없었다면’ 연어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거라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고귀함. 멀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처럼 고귀한 일입니다. 시의 화자인 연어에게는 자신의 주검을 거두어줄 ‘손’이 있습니다. 그것이 강물일 수도 있고, 시인일 수도 있고, 비록 남대천의 낚시꾼이라 할지라도 산란이 끝나기를 기다릴 줄 알며 연어의 삶에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은빛 시체’를 ‘배고픈 별빛들이’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밤, 그때 연어의 몸피를 물고 있는 빛나는 웃음들은 삶의 역동성과 순환성을 노래하는 찬가로 변주되겠지요.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으로 돌진하는 연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것만큼 처절하고도 성스러운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요.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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