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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노인, ‘조금’이면 행복하다- 이문재(문화체육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3-10-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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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하늘이 내리는 맑은 햇살. 간간이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푸른 잔디가 곱게 깔린 운동장.

    마당 한편에선 국밥이 구수한 김을 내뿜고, 그늘막 아래 펼친 자리마다에는 막걸리와 고기, 떡 등 먹거리가 푸짐하게 깔렸다. 서로서로 막걸리 잔을 권하며 정담(情談)을 나누는 모두가 밝고 환한 표정들이다.

    운동장에서 경기 중인 선수들은 신이 난 듯 큰 목소리로 팀원들의 파이팅을 독려한다. 때론 환호성이, 때론 탄식을 터뜨리며 시합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청춘’이다.

    볕 좋은 10월의 어느 날, 기자가 맞닥뜨렸던 행복한 풍경이다.

    지난주 창원의 한 운동장에서 열린 게이트볼대회. 행사에 참가한 노인들의 즐거움과 행복은 구경꾼이었던 기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일까,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이 쉽게 지나쳐지지 않았다.

    하도 즐거워 보이길래, “어머니도 저분들과 같이 계셨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날 운동장에서 만난 노인들을 보면서, 그들 또한 젊은 세대 못지않은 열정과 끼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출전 선수들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참가자 너나 없이 승부욕도 만만찮았고, 파이팅도 뜨거웠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보다 진지함은 더했고, 서로를 위한 배려와 결과에 대한 승복(承服)은 보기 좋을 정도로 깍듯했다.

    흔히들 노인은 젊은 세대들에게 군림하려 하고, 억지 대접을 받으려는 그저 나이만 많이 먹은 세대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날 만난 노인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또 결과를 겸허히 수용할 줄 아는 성숙한 세대였다.

    이날 노인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했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놀 수 있도록 행사를 마련해줘 정말 고맙다. 모두가 행복해하고 있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노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에 참으로 고마워 하는 눈빛이었다.

    최근 국내 한 민간 경제연구원이 ‘경제적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전체로는 100점 만점에 50점에도 미치지 못했고, 50대와 60대의 행복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60대의 행복도는 35.7로, 20대의 행복도 45.9에 크게 뒤떨어졌다. 60세 이상 가구의 소득은 112만 원, 적자가구의 비중도 38.2%로 전체 평균(29%)보다 더 높았다.

    특히 60세 이상의 문화비, 외식비 등 삶의 질 관련 지출은 가장 낮았고, 공적연금 가입률도 14.6%에 불과해 노후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세대는 풍족한 오늘을 만든 주역이다. 그들이 주린 배를 움켜지고 흘린 피와 땀이 지금 세대들이 누리는 풍요와 행복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풍요와 행복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혹 발을 들여놓을라 치면 후대(後代)들이 불편해할까 봐, 또 괜한 노탐(老貪)으로 비쳐질까 봐.

    때문에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아주 고맙고, 아주 따뜻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노인들에게 결코 관대하지도, 후하지도 않다. 많은 정책과 지원들이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역’으로, 청·장년은 ‘국가 경쟁력의 주역’이라며 치우쳐 있다.

    노인들도 한때는 어디엔가의 주역이었고, 노력과 열정을 쏟은 만큼 정책과 지원의 울타리에 들어설 자격이 있지 않을까.

    이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아직도 또렷하다. “노인 대접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노인 취급은 안 했음 좋겠어.”


    이문재 문화체육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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