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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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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출항준비, 올 엔진 스탠바이!- 이재성(시인)

  • 기사입력 : 2013-10-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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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의 바다로 출항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뱃전을 감은 ‘계류삭’이 단단히 묶여 있는가? 문장이라는 이름의 항해사는 기상예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는가? 넓은 대양으로의 항해를 위해 선장인 당신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숙달되고 엄선된 선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신선하고 적합한 문장을 선적하고 있는지. 문학의 바다로 나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신춘문예란 출항을 뜨겁게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 모든 출항 준비에 관해 꼼꼼하게 점검할 시간이다.

    2014년 1월 1일자. 대한민국에 뜨겁게 불어올 1호 태풍의 이름은 언제나 ‘신춘문예’다. 당선의 영광을 위해 이미 수많은 배들이 각자의 항구에서 출항의 뱃고동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메인마스트에 출항의 깃발인 ‘블루피터’ 높이 내걸고 모두들 출항에 설렐 것이다.

    잊지 마시라, 긴 항해가 될 것이기에 많은 선적용품도 실어야 할 것이지만 그 중 바라를 닮은 블루블랙 잉크 한 병과 금촉 만년필은 필수 품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망망한 바다에서 오직 북극성을 찾아 항해해야 한다. 육분의를 가지고 어느 곳에서도 좌표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나침판의 북극을 따라 항해하다 보면 얼음을 깨고 가야 하는 쇄빙의 항해에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거침없이 경쟁하며 항진하는 대형 고래들과 북극의 아름다운 오로라를 빠짐없이 항해일지에 기입해야 한다. 매서운 태풍 앞에서 노도의 바다 앞에서 굳게 잡은 조타륜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때론 잔잔한 바다 앞에서 경배도 올려야 한다. 이러한 다짐을 가슴에 품지 않는다면 당신의 배는 아무도 모르게 좌초되고 부서지고 사라질 것이다. 물거품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신춘문예라는 태풍을 견뎌야 할 것이다. 깔끔하게 박음질한 돛을 감추고 비트에 감긴 계류삭을 더욱 단단하게 매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가벼운 태풍이 아니다. 이 태풍을 견디지 못한 채 좌초된 배들로 바다 폐선장은 이미 만원이다.

    앵커를 수심 깊은 곳까지 박아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바다의 침묵을 기다리며 당선의 무선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이 태풍을 견뎌내라 말하고 싶다. 어떤 좌절이라도 견디다 보면 태풍이 순풍으로 바뀌어 당신의 배를 바다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해마다 출항 준비를 해야 한다. 올해가 아니면, 내년에 또 출항할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

    명심할 것은 신춘문예는 당선 뒤에 더 넓은 바다를 만나는 과정의 시작이다. 신춘문예는 항해의 완성이 아니다. 새로운 출발이다. 도전자의 정신은 시인이란 이름표가 아니라 명예다. 허나 그 명예에 안주하려면 아예 도전하지 마라.

    나는 25살, 대학생으로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그러나 나에게 시를 가르친 스승은 냉혹했다. 우리나라 바다를 보고 바다가 무엇인지 알겠냐며 더 큰 바다로 떠나게 했다. 당선된 5월, 나는 선원수첩을 발급받고 짐을 꾸려 북태평양에서 낮에는 꽁치를 잡고 밤에는 눈물과 피로 항해일지 대신 시를 썼다. 추운 바다에서 돌아와 나는 27살에 그 항해일지로 첫 시집을 냈다.

    신춘문예 당선에 안착했다면 나는 일찍 좌초했을지 모른다. 신춘문예는 당선에 있지 않다. 10년, 20년, 30년 도전하는 정신 없이 펜을 잡는다면 당신도 나도 너무 쉽게 지는 꽃일 것이다. ‘201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항구에 수많은 배들이 저마다의 깃발을 올리고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디에도 없는 장관이다. 가슴 뛰는 엔진소리와 길게 한 번 뿜어지는 에어 혼 소리가 들린다.

    대한민국밖에 없는 문학축제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라. 도전하는 한 희망이 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치열하고 간절하지 않으면 바다는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결국 당신의 항로는 당신의 배가 그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올 엔진 스텐바이! 자, 출항이다.

    이재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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