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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4) 시인 박서영과 사진작가 김관수

‘순간’을 치열하게 담았다… 그래서 시와 사진은 닮았다

  • 기사입력 : 2013-10-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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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영(왼쪽) 시인과 김관수 사진작가가 3·15아트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서영 시인이 김관수 작가의 작품을 보고 느낌을 얘기하고 있다.


    ‘좋은 구름이 있다고 했다. 사진작가들은 그런 걸 찾아 떠난다고 했다. 빈 들에 나가 여자를 불렀다. 사랑스러운 여자는 화장하고 옷 차려입느라 늦게 나갔다. 사진작가는 버럭버럭 화를 냈다. 좋은 구름이 떠나버려서, 좋은 구름이 빈 들과 여자를 남겨두고 떠나버려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여자는 오래 빈 들에 서서 보았다. 사자와 치타. 새와 꽃. 눈물과 얼룩. 구름 속에서 자꾸 구름 아닌 것들이 쏟아졌다. 남자는 화가 나서 떠나갔다. 한 프레임 속에 좋은 구름과 빈 들과 여자를 넣지 못해서.(…)’

    시인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시를 읽어 내려갔다. 가만히 듣던 사진작가가 “어, 이건 내 이야긴데?” 라며 웃었다.

    박서영 시인은 시 ‘좋은 구름’을 “순간에 집착하는 사진작가의 예술적 광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라 설명했다.

    마주 앉아 있던 김관수 사진작가는 “나도 친구들이 안부를 물으면 뜬구름 잡으러 다닌다고 말한다”며 또다시 웃었다.

    ‘좋은 구름’을 포착하기 위해 욕망하는 사진작가, 그리고 그 사진작가를 통해 ‘또 다른 구름’ 포착하려는 시인이 만났다.

    시월의 어느 오후, 창원 3·15아트센터 야외벤치에서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지는 10년이 됐지만, 둘만의 대화는 처음이라 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어색해했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유쾌했다. 그리고 둘의 대화 내용은 가을 나뭇잎처럼 짙고 투명했다.


    ◆시인과 사진작가 그리고 만남

    김 작가는 2008년 발간됐던 사진집 ‘늪’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작가의 늪 사진과 지역 시인들의 시가 어우러진 작품집이다.

    책 45쪽, 박서영 시인의 시 ‘늪의 기원’이 김 작가의 ‘늪’ 사이에 놓여 있었다.

    김 작가는 “20년간 주남만 찍어서 책을 만들었는데, 평소 시를 좋아하다 보니 작품에 어울릴 만한 좋은 시를 찾아서 넣게 됐다”며 “시인들은 사소한 어떤 것에서 낯선 것을 가져와서 절묘하게 표현하는데, 박 시인의 작품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묘하게 연결시키는 매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읽는 내 시”라며 찬찬히 책을 들여다보던 박 시인은 “김 선생님의 사진 속 구름의 흑백 대비가 강렬하고, 함축적이고 단순하다. 시와 닮았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김 작가의 작업실로 기억했다.

    “제가 김 선생님 작품이 좋다고 선생님 지인분이 작업실에 갈 때 따라갔어요. 그날 선생님이 빨간 표지의 두꺼운 조선시대 민화집을 보여줬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통하는 걸 느꼈어요. 그 책을 빌려가고 싶었는데, 너무 귀해 보여서 차마 빌리지 못했죠.(웃음)”

    조선 기층민의 삶이 그려진 그 민화집은 김 작가가 1989년도 일본에서 50만 원을 주고 산 희귀본이다. 그 민화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시인과 사진작가는 소통이 됐고, 인연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 작가는 “나는 동료 작가보다 시인 친구들이 더 많아요. 박 시인과 알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고등학교 시절 시인을 꿈꿨을 정도로 시를 좋아했고, 지금도 많이 읽습니다. 또 시인들과는 작품과 예술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눌 때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시와 사진은 같다

    시인은 사유하기 위해 사진을 보고, 사진작가는 영감을 얻기 위해 시집을 읽는다고 말했다. 시인과 사진작가가 서로의 독자인 셈이다.

    이러한 교감이 가능한 이유를 두 사람은 “시와 사진이 닮았기 때문”이라 했다.

    김 작가가 말했다. “사진이라는 구조와 가장 유사한 구조가 시입니다. 시론 책 가져서 사진 집어넣으면 사진 교재가 되죠. 둘 다 상징, 은유, 함축적. 묘한 선택의 예술이에요. 저는 작업이 막힐 때 시집을 읽습니다. 읽다가 언뜻 딱 한 구절에서 영감을 얻죠. 별거 아닌 것을 정말 별거처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시인인 것 같아요. 늘상 보는 나뭇가지 하나인데, 어느날 갑자기 그 나뭇가지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죠. 사진도 그런 관점을 가지고 찍어야 하거든요.”

    박 시인은 두 개의 장르 모두 ‘순간의 예술’이라는 점이 같다고 했다.

    “저도 사진예술론 책을 보는데 시론과 같아서 놀랐습니다. 둘 다 순간의 예술이죠.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인데, 시인은 순간의 이미지를 보면서 생각이 흘러가게 하지요. 시인과 사진작가는 정지된 순간 앞에서 사유를 움직이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서로의 독자가 되는 것 같아요.”

    순간을 포착하고 사유를 담아내는 것이 예술 중에서 비단 시와 사진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왜 유독 시와 사진이 닮았다는 걸까.

    박 시인이 답했다. “물론 회화에서도 영감을 받지만, 회화는 이미 작가가 일차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린 것이라 다른 상상력 불어넣기에 한계가 있어요. 반면 비교적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면이 있는 사진은 이야기를 풀기가 쉽죠. 흘러다니는 사유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제 작품에서도 사진을 계기로 쓴 시가 많습니다.”



    ◆처절함과 진정성, 예술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시와 사진이란 장르적 공통점 못지않게 두 사람의 작업 태도도 닮아 있었다. 처절함과 진정성이 그것이다.

    김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작업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디지털로 작업하는 것은 인스턴트 식품, 컵라면을 먹는 기분이에요. 아날로그는 어설프게 밥을 해서 된장을 끓이고 고추장 넣고 깨소금을 넣어 비벼먹는 그런 느낌이 있죠. 필름이 돈도 많이 들고 귀찮죠. 그래도 저는 아날로그를 고집해요.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고, 이것도 쭉 해나갈 필요가 있는데 너무 한꺼번에 변하면서 아날로그를 빨리 버린 것 같아요. 야속하죠.”

    박 시인도 “자본주의 사회, 감성적으로 살려면 시, 사진, 여행, 에세이가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감성이 아날로그 감성으로 돌아가야 깊이가 생긴다”고 했다.

    김 작가는 자신을 경남 일대에서 가장 필름을 많이 쓰는 작가라 말했다.

    “필름카메라는 단점이자 장점이 즉시성이 없는 거예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죠. 여러 번 찍은 후 인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설렘, 그리고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때의 희열이 있죠. 사진이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프린트를 다시 하는데, 인화소에서 제가 필름을 갖다 쓰는 것을 보면 부자라고 해요. 암실에서 빛을 더 주고, 덜 주고 하는 작업이 있어요. 다듬는 과정이에요. 인화하는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손을 대면(작가는 이를 ‘버닝 다찡’ 작업이라 했다) 사진 하나하나 똑같은 작품이 없죠. 과정은 길지만 그만큼 희열도 큽니다. 지금도 암실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면 ‘아!’ 소리를 지릅니다.”

    박 시인이 반색한다. 그것이 시 한 편, 시집 한 권을 퇴고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했다.

    “시를 쓰면서 여기다 마침표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조사를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죠. 그러다 겨우 한 자 고쳤음에도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어요. 저는 책을 내기 전에도 수차례 단골 인쇄소에 가서 제가 쓴 작품들을 시집처럼 프린트 인쇄를 해봐요. 시만 완성된다고 끝이 아니죠. 시를 그냥 일반 지면에서 볼 때랑 시집에서 볼 때랑 다르거든요. 2~3달에 한 번씩 가서 새로 프린트를 하는데, 인쇄소에서 매번 아직도 책이 아직 안 나왔냐고 묻죠.(웃음)”

    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아마도 그들의 쓰레기통에 쌓였을 필름과 파지의 부피가 그들 작품의 깊이와 비례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예술계에 화를 내다

    애정이 없으면 분노도 없는 법이다. 두 작가는 지역 예술계와 젊은 작가들에 대한 애정만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 작가가 먼저 이야기를 열었다.

    “박 시인을 안 지 10년이 흘렀는데, 아직 젊은 시인이라는 것은 놀랍습니다. 물론 나이가 있으면 경륜을 통해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을 텐데요.”

    “김 선생님이 처음 사진 시작할 때 불모지였고, 자발성에 의해서 선택에 의해 일했죠. 저도 타인에 의해서 한 것이 아니라 내적 욕망에 의해 자발적으로 한 것이에요. 예술이 삶과 붙어 있으니까 치열하게 할 수 있었죠. 요즘처럼 다른 것을 하다가 이것도 해볼까 하면서 시작하는 추세와 그 치열성은 다른 것 같아요.”

    김 작가는 이에 대해 진정성의 결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요즘엔 예술을 외출 때 액세서리 장식하는 것처럼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요. 사진은 더욱 심해요. 콘테스트가 유행하면서, 예비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고민이 가벼워졌어요. 목표가 콘테스트가 되면서 작가의 세계관 작품관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방향 설정이 잘못 되는 거죠. 사진을 전시하려면 작가가 자기 연혁을 씁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진 하나가 멋있다고 그 사람의 작품세계가 판단되는 건 맞지 않아요. 자기 색을 가진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하죠.”

    박 시인도 단편적 작품의 우수성보다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높이 평가돼야 하는 데 공감했다.

    “사람들은 시에서도 한 편 한 편 완성된 작품을 바라요. 예술은 그 작가의 세계관을 엿보는 것인데, 단편적인 것만 가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위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들이 똑똑해져야 해요. 독자들이 좋은 작품, 좋은 글을 알아봐 줘야 좋은 작품이 주목받고, 자꾸 만들어지니까요.”

    김 작가는 “그래서 사진 콘테스트보다는 사진전이 많아야 하고, 시인들도 시집을 활발하게 발표해야 예술이 사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끊임없이 찍고, 끝없이 쓰겠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박 시인은 내년에 두 번째 시집이 나온다.

    “늦었지만 두 번째 시집이 나오고, 정리가 될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끊임없이 찍고, 시를 쓰는 사람은 끝없이 써야만 그 존재성이 확보되는 거잖아요.”

    김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시도한다.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카메라를 개조했어요. 디지털 카메라를 적외선이 통과될 수 있도록 개조해서 디지털로 적외선을 찍어 보려고요. 또 제가 만든 IPA갤러리에서 연속적으로 신예 작가들의 그룹전, 개인전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예술은 우주를 품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예술을 공부하고 탐하는 두 사람의 작품에 또 어떤 우주가 담길지 기대가 됐다.

    글=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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