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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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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⑤ 보드가야(Bodhgaya)

석가모니가 깨달음 얻은 곳서 마주친 ‘사랑길 징표’
붓다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 얻었다는 마하보디 사원
이곳 무찰린다 호수에서 아유타국 공주의 발자취를 가늠할 소중한 증거인 쌍어 조형을 만났다

  • 기사입력 : 2013-10-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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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의 무찰린다 호수 입구에서 발견한 쌍어 조형물. 두 마리 물고기가 양쪽 기둥에 앉아 무찰린다 호수를 지키고 있다.
    마하보디 사원의 마하보디 대탑(大塔)은 높이 52m, 9층의 피라미드형으로 내부에 좌불(坐佛)이 있다.
    이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마하보디 대탑 주변 보리수나무 아래서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보드가야는 초원이 펼쳐진 평원으로 목가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초원에서 노는 아이들.



    허황옥이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을 위해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가야까지 멀고 험난한 길을 떠난 허황옥 루트를 밟고 있다.

    그녀의 발자취가 남긴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따라 ‘Asia Forever Romance Road’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두 마리 물고기를 찾아다니며 아요디아를 답사하고 바라나시를 돌아보았다.

    그러던 중 바라나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야(Gaya)’가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가 동쪽 김해로 향하는 명품 도시들이다.

    게다가 인도의 가야는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지로 불자들이 한 번쯤 꼭 순례를 하고 싶어하는 곳 아닌가.

    바라나시를 떠난 차는 4시간 남짓 걸려 가야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야에서 10㎞ 떨어진 보드가야(Bodhgaya)로 향했다. 보드가야는 인도 북동부 비하르(Bihar)주 파트나의 남쪽 80㎞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이곳도 지난 7월 폭탄 테러로 전 세계 뉴스를 장식한 곳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던 사원이 있는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 반경 1㎞ 이내에서 9차례에 걸쳐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로 티베트 스님을 포함해 2명이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여행자들은 나를 붙잡으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번 노정의 코스들은 종교분쟁으로 인한 유혈 테러 등으로 일반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아요디아를 비롯해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할 때마다 들리는 뉴스는 홀로 여행하는 이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동쪽으로 향했다면 이곳을 지나쳤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야로 향했다.

    가야에서 보드가야로 향하는 길은 목가적이었다.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 길에서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머릿결이 바람에 날렸다. 바라나시를 떠나 불과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우울하고 암울한 영혼이 떠도는 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초원에서 뛰노는 아이들 모습은 테러 뉴스로 경직되었던 내 마음속 근심을 날려 보낼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나는 숙소를 잡자마자 쉬지 않고 불교인들의 성지로 향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하보디 사원이다.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은 붓다가 오래 고행 끝에 득도한 곳으로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신발을 벗고 사원 입구로 들어섰다.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객은 모두 신발을 벗어야 했다. 사원 입구로 들어서자 군인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폭탄 테러 때문인지 검문검색이 까다로웠다. 한낮의 사원 바닥은 후끈 달아올라 발바닥까지 열기가 전해졌다. 대탑 서쪽으로 돌아가니 금강보좌(金剛寶座)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보좌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로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먼 이국에서 온 순례자들부터 승려에 이르기까지 보리수나무 아래서 묵념과 그들만의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부처는 이곳에서 한 주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지냈다고 한다. 첫 주에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지내고, 둘째 주에는 보리수나무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셋째 주에는 보리수나무와 사당 사이를 오가며 명상했다고 한다.

    마하보디 사원에서 나는 놀라울 정도로 평안한 얼굴의 노승을 보았다. 나도 그 스님을 바라보며 처음 부처가 마치 보리수나무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평안한 마음이 되었다. 뒷짐을 지고 걷는 노승은 심오한 명상을 하면서 부처의 셋째 주를 기억하는 듯했다. 나는 그 스님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미안한 마음에 미소라도 전해 드리고 싶었지만 스님의 눈길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스님이 무언으로 말씀하시는 듯했다.

    “네가 거기서 무엇을 하든 네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니라. 세상은 원래 공허한 것이니 관여도 상관도 하지 말라.”

    나는 개의치 않고 그의 경건한 의식을 촬영했다. 또 여러 순례자들을 바라보면서 사원을 걸었다.

    부처가 마지막 여섯 번째 주를 보낸 무찰린다 호수로 발길을 옮겼다. 나는 뜻밖에도 호수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좌우대칭으로 만들어 놓은 두 마리 물고기 조형을 만날 수 있었다. 아요디아에서부터 김해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 전 아유타국 공주의 발자취를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증거물을 또 발견한 것이다. 허황옥 루트를 따라 김해로 향하는 길에서 이 쌍어문은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게다가 나는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의 역사 추적 시리즈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를 바탕으로 쌍어 문양을 따라가고 있기에 이번 발견으로 이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바라나시나 이곳(보드가야)은 대중성 있는 루트를 연결시키기 위해 새롭게 시도하는 곳인 만큼 이곳에서 발견된 두 마리 물고기 무늬나 조형물들은 아요디아부터 김해까지의 루트에서 간과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기존 자료나 기록도 없는 곳에서 두 마리 물고기 문양 같은 작은 단서라도 발견할 때면 나는 실크로드나 차마고도를 넘어서는 ‘Asia Forever Romance Road’를 만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아요디아와 바라나시 그리고 이곳 보드가야에서 만난 두 마리 물고기 문양들을 따라가며 나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재미있고도 신비로운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마하보디 사원의 무찰린다 호수 입구에 있는 두 마리 물고기 조형물 앞에서 셔터를 누르면서 생각했다. 많은 탐험가들이 실크로드처럼 자동차로 이 길을 달리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배낭 여행자들은 두 마리 물고기를 따라나서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종착지 김해시에서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너도 영원한 사랑의 상징 ‘Forever Romance city’ 김해로 향하는 나의 이정표다.”

    불타성도(佛陀成道)의 땅 보드가야를 뒤로했다.

    나를 실은 삼륜택시 ‘오토릭샤’는 갈대가 하얗게 펼쳐진 네랑자라강을 따라 거침없이 달렸다. 강변을 빼곡히 채운 갈대들은 먼 산 아래에서 부는 바람 때문인지, 강바람 때문인지 가볍게 나부꼈다. 아침저녁, 어제 그리고 오늘,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는 내 몸과 마음 같았다.

    사원에서 들은 듯한 말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네가 거기서 무엇을 하든 네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니라. 세상은 원래 공허한 것이니 관여도 상관도 하지 말라.”

    어느새 내 가슴속 모든 욕구와 충동도 잠들었다.

    다음 여정에서는 무언가 새롭게 숨겨진 위대한 비밀이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글·사진= 남기환 (사진작가·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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