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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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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⑥ 영원한 사랑의 길목을 넘어

미얀마 국경에 발을 디뎠다 … 곧 ‘로맨스 로드’를 만난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미얀마 국경으로 향했다
산허리까지 운무가 깔린 길을 달려

  • 기사입력 : 2013-11-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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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국경마을 감배지에서 만난 학생. 미얀마 전통 화장품인 ‘타나카(Thanakha)’를 얼굴에 발랐다. 타나카는 미얀마의 천연 자외선차단제다.

    미얀마의 미치나로 향하는 중국 후교 국경. 미얀마 북부의 최대 도시 미치나(Myitkyina)와 140km 떨어져 있다.


    중국의 도시 후교와 미얀마의 감배지를 잇는 옛 마방로를 따라 비포장 도로를 오르면 미얀마와 중국의 우호비가 있다

    중국의 변경도시 후교의 상인들. 미얀마의 변경도시 감배지에서 넘어온 상인들은 중국의 변경으로 넘어와 상업 활동을 하고 저녁이면 다시 국경을 넘어 간다.




    인도 일정을 마무리하고 항공편을 이용해 미얀마로 향했다. 미얀마는 항공 입국만 허락되고 육로 입경은 봉쇄됐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중국에서 입경을 시도하기 위해 국경도시, 후교로 향했다. ‘Asia Forever Romance Road’의 중간 지점인 중국의 국경도시, 후교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국경을 넘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여장을 풀자마자 거리로 나섰다. 모두가 영어 한마디도 못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입시를 위해 배웠던 중국어를 기억나는 대로 쏟아냈다. 우여곡절 끝에 영어가 몇 마디 되는 가이드 겸 운전사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중국인과 미얀마인들만이 유일하게 통행이 허락되는 작은 미얀마의 국경마을 감배지(甘拜地)라는 곳까지 왕복하는 미니버스를 통째로 예약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으로 향하는 길은 잘 닦여 있었다. 처음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지더니 점차 깊은 숲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까마득한 산허리까지 운무가 깔렸다. 이 길이 끝나는 곳이 국경이다.

    어떤 일이 생길까.

    늘 머물던 곳을 떠나고 새로운 곳을 향할 때면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했지만 이번엔 긴장감도 들었다. 마치 길도 없는 깊은 안갯속을 달리는 것 같았다. 차는 후교를 떠난 지 30여 분 만에 엄격한 세관원과 공관들이 일하는 국경 검문소를 만났다. 비가 창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란 망원렌즈를 창문 밖으로 슬그머니 내밀었다.

    그때 나는 검문을 위해 세워둔 세관의 아치에서 ‘Asia Forever Romance Road(김해로 향하는 영원한 사랑의 길)’라고 써있는 문구를 본 듯 환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내가 이 길을 다시 온다면 기필코 차를 타고 넘어오겠노라고.

    중국의 곤명(昆明)과 후교를 지나 미얀마 국경을 넘어 가는 길은 옛 마방로에서 차마고도로 등충(탱충)을 넘어 미얀마를 거쳐 인도로 들어간다. 중국과 미얀마, 그리고 인도로 향하는 길은 폐쇄됐다가 최근 인도와 중국의 노력으로 교역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개방이 임박해졌다. 중국에서 미얀마로 통하는 옛 차마고도의 이 길목은 이미 2000년 전, 아요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아요디아에서부터 김해까지 건너오는 길에 만난 험난한 사랑의 여정이 담긴 길목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를 태운 운전사는 긴장감이 보였지만 침착하게 나를 인솔했다. 운전사는 자신이 중국인이고 그의 아내는 미얀마인으로 감배지와 중국의 후교를 오가는 미니버스 기사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에게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결혼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사뭇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에 흐뭇한 표정으로 차를 몰았다.

    그는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빨리 눈치챘다. 나를 배려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몇 컷의 사진을 찍다 보니 간첩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 검문소는 어눌한 사진 한두 컷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다시 정식 국경검문소를 옆으로 비켜 2000년 전 인도 아요타국의 공주가 김해까지 향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영원한 사랑의 길목을 빗속을 뚫고 달렸다.

    나를 태운 미니버스는 미얀마와 중국의 정식 세관이 있는 국경 검문소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빠져들어갔다. 최근 중국은 미얀마를 통해 뱅갈만과 서남아시아로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국경을 잇는 도로 건설에 그들의 자금을 투입하면서 국경을 개방하려는 노력으로 선린주의를 펼치고 있다. 그래선지 아무 통제도 없이 어렵지 않게 중국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미얀마 세관에서도 운전사는 간단한 심사를 받고 어설픈 미얀마 검문도 별일 없이 통과했다. 중국과 미얀마, 그들의 허술한 국경 검문은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미얀마를 넘어 중국까지 자동차로도 어렵지 않게 달릴 수 있는 ‘Asia Forever Romance Road’ 육로 여행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국경 자유개방도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미얀마 국경마을 감배지를 둘러보았다. 감배지는 조그만 미얀마의 변경마을이다. 감배지는 도시라기보다 허름한 상점들과 몇몇 집단 거주지로 촌락을 이룬 작은 마을 수준이었다. 중국인들이 세운 작은 호텔이 그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우산을 들고 등교하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미얀마의 천연화장품인 타나카(Thanakha)를 양 볼에 바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미얀마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감배지의 거리에 늘어진 상점들은 허술했다. 나를 안내한 드라이버는 감배지의 사람들은 자신이 미얀마를 넘나드는 것처럼 그들도 중국의 국경을 자유스럽게 드나들며 인근 변경도시와 교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미얀마의 국경도시 감배지를 돌아보면서 욕심이 생겼다. 감배지에서 미치나(Myitkyina)라는 미얀마 북부의 최대 도시와는 불과 140km 떨어져 있다. 나는 미치나까지 향하고자 운전사를 설득했다. 하지만 운전사는 미치나로 향하는 경유지는 지금도 간헐적으로 미얀마 반군과 정부군의 충돌이 있는 곳이니 마음을 접으라고 말했다. 나는 공적인 답사 길에 무법자처럼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 임무를 띠고 온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비자가 없는 밀입국자라는 사실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다음 답사에는 미얀마 정부의 협조를 얻어 자동차로 인도와 미얀마, 중국 국경을 넘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비포장길을 타고 산길로 올라 옛 마방로 정상에 올랐다. 비포장으로 난 좁은 길은 옛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길은 과거 중국 쿤밍에서 생산된 차가 백족의 도시 대리(따리)를 거쳐 4기 화산으로 유명한 등충을 지나 미얀마를 넘어가는 차마고도이다. 정상에 이르자 중국과 미얀마 국경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중국, 미얀마, 1933m’.

    나는 경계석에 손을 얹고 촉촉히 내리는 보슬비를 맞았다. 미얀마 국경 검문소만 지나면 2000년 전 아요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향한 김해로 향하는 영원한 사랑의 길, 포에버 로맨스 로드가 펼쳐지는 것이다. 김해로 향하는 길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맛에 여행을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비자도 없이 밀입국한 사실도 잊은 채 스스로 감격에 젖어버렸다.

    나는 홀로 인도 아요디아에서 인도의 북동쪽 끝 아삼(Assam)을 지나 이국의 경이로운 풍경과 낯선 얼굴들 속에서 허황옥 공주의 흔적인 두 마리 물고기 문양만 찾아 다녔다. 천길 낭떠러지 절벽의 비포장길에서 차를 몰고 새벽을 가르는 기차를 타고 경이롭고 신비스런 길을 걸으면서 여행을 했다. 일시적인 유희로 느끼는 순간의 사랑과 기쁨 대신에 고독과 자유를 느끼면서 영원한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제는 ‘Asia Forever Romance Road’, 김해로 향하는 길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김해의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된 아요타국의 공주 허황옥, 그녀의 뒤를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나는 다시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두 마리 물고기를 찾아 미얀마와 중국의 곤명을 잇는 옛 차마고도의 기점 등충으로 향했다.



    글·사진=남기환

    여행작가·사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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