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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에 대한 문학적 고찰

- 최영철

  • 기사입력 : 2013-11-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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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사에 대한 문학적 고찰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소프트웨어의 크기는

    손가락 마디 하나

    인간을 조종하는 뇌의 크기도

    쏟아놓으면 한 접시

    배후조종은 정체를 숨기느라 크기가 작다

    지시하고 분노하고 쾌락을 거두어가는 뇌

    몸은 한 주먹 뇌의 노예

    흡연 음주 마약 섹스

    이 모두 뇌가 하달한 명령

    심심해 주리트는 뇌가 즐겁자고

    몸은 너절하게 망가지는 헌신짝

    몸은 한 주먹 뇌의 노예

    때가 되면 기진맥진 만신창이로 버림받는다

    뇌사는 뇌에게 버림받기 전

    몸이 먼저 뇌를 걷어찬 몸의 반격

    재빠른 특공대가 몰래 잠입해

    삽시간에 뇌를 무찌르고 온 것

    뇌의 빈소에 조문까지 했으니

    아 이제 아무것도 부럽지 않고

    아무것도 즐겁지 않고

    아무것도 아프지 않아 좋아라

    광포한 군주가 떠난 들판에 피어오른

    넓고 오랜 평화의 기운

    공손히 받들던 뇌를 깔고 앉은

    몸의 휘파람소리 - <시에> 2013년 가을호

    ☞ 신체를 뇌와 몸의 이원구조로 보고 있는 시입니다. ‘뇌사에 대한 문학적 고찰’이 제목이지만, 뇌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로도 읽힙니다. 신체의 권력구조와 사회 권력의 역학관계가 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시하고 분노하고 쾌락을 거두어 가는 뇌’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몸’은 감시당하고 조종당하는 입장에서 시스템의 전복을 꾀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 컴퓨터 칩이나 ‘한 주먹 뇌’가 거대한 체구의 세계를 노예 부리듯 하고 있으니까요. 실컷 부림을 당하다가 ‘때가 되면 만신창이로’ 버려질 테니. 마치 빙의를 당한 것처럼 ‘흡연 음주 마약 섹스’까지 뇌의 지시대로 움직이던 ‘몸’이었으니.

    그러나 시스템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순간, 뇌와 몸은 공멸합니다. ‘광포한 군주가 떠난 들판에 피어오른/ 넓고 오랜 평화의 기운’과 ‘몸의 휘파람소리’는 죽음의 역설적 표현입니다. 이런 비극의 결말로 치닫기 전에 경영자와 피경영자가 서로 소통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알레고리로 읽어봅니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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