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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71) 김승강 시인이 자전거를 타고 간 거제 칠천도

철 지난 해변에서 읽는 시의 달콤함이란…
‘그래, 섬으로 가자 사랑의 기억을 묻기에 섬만큼 좋은 곳은 없지.’
섬 속의 섬 칠천도는 자전거로 돌기에 딱 알맞다

  • 기사입력 : 2013-11-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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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 칠천도 옆개해수욕장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소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시집을 꺼냈다.
    칠천교에서 거제도 쪽을 바라본 풍경.
    가을햇살은 따뜻하고 바다는 잠잠했다.
    도로변 외딴집 화단에 핀 꽃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꽃도 마찬가지야. 어느 별에 사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감미로울 거야. 별들마다 모두 꽃이 필 테니까.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이 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별에는 꽃이 피어 있단다. 이 지상에 사는 누군가가 그 꽃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왜 밤하늘을 바라보는 게 감미롭지만은 않지. 내 사랑으로 저 별에 꽃이 피었다 해도 내가 저 별의 꽃의 향기도 감촉도 느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밤하늘의 저 광활한 꽃밭의 꽃들은 그것에 비례하는 수만큼 이 지상의 누군가의 사랑으로 피었을 터. 그렇다면 이 밤 수많은 이들이 나와 같이 밤하늘을 바라볼 것이고, 나와 같이 별들을 바라보는 게 감미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터이니, 다행이다. 나만 슬픈 게 아니구나. 나만 그리운 게 아니구나.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외로운 자여, 이 밤 어디에 있는가.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 사랑을 나누자. 밤하늘의 별, 밤하늘의 꽃은 잊고 ‘지금 여기’서 다시 사랑하자. 향기를 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면 꽃은 왜 필요하단 말인가. 저 밤하늘의 사랑은 껍데기로 그냥 두자. 저 밤하늘의 꽃은 플라스틱으로 된 차가운 조화라고 생각하자. 가끔씩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어느 날 나는 밤하늘의 별에 핀 꽃 한 송이와 나눈 기억들을 어쩌지 못해 고민하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섬이다. 그래 섬으로 가자. 사랑의 기억들을 덤프트럭에 실어 폐기할 수 있는 곳, 섬. 핵폐기물을 폐기하듯이 사랑의 기억들을 폐기할 수 있는 방폐장, 섬. 섬은 사랑의 기억을 묻을 수 있는 무덤. 섬만큼 사랑의 기억을 묻기에 좋은 곳은 없지. 섬에서 돌아와 새로운 사랑을 꿈꿀 수 있을 거야.

    마침 좋은 섬을 알고 있었다. 딱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생긴 섬이었다. 칠천도. 나는 ‘기억의 폐기’라는 계획은 잊은 채 섬으로 떠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시집 한 권과 전자책 단말기를 챙겨 백팩에 넣었다. 한 시간 정도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선상에서 읽을 생각이었다. 시집은 이병률 시인의 ‘눈사람 여관’을 골랐다. 전자책 단말기는 읽다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마저 읽을 생각이었다. 아마 나는 거창하게도 뭍에서의 기억들을 뒤로한 채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나’를 흉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들고 선미를 따라오는 갈매기들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갈매기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과자를 받아먹으려고 거의 반 이상의 거리까지 따라올 것이다. 사람들은 재미로 새우과자를 던졌고 갈매기는 서로 새우과자를 받아먹으려고 경쟁했다. 새우과자 몇 조각을 받아먹기 위해 그렇게 집요하게 배를 따라오다니. 그러나 거대한 배의 스크류가 돌아가면서 일으키는 새하얀 포말의 뱃길을 따라 새우과자를 쫓아오는 갈매기의 풍경은 그것대로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나는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진해 속천항으로 달렸다. 자동차는 속천항 주차장에 주차해 놓으면 되었다.

    칠천도는 진해 속천항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 실전항에 내려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섬이다.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작년에도 다녀왔다. 칠천도는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돌기에 딱 알맞은 섬이다. 갈 때마다 자전거와 함께했으니 내 자전거는 이번에도 배를 타게 됐다. 배를 탄 자전거의 느낌은 어떨까. 자전거가 안 돼 봐서 알 수 없지만 배를 탄 자전거 주인의 느낌은 안다. 배를 타고 있는 자전거를 보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자전거를 태우고 있는 배가 보이고 나를 태우고 있는 자전거가 보인다. 그래서 배를 타고 있는 우리는 똑같은 여행자가 된다.

    그런데, 배를 탈 수 없단다. 배가 떠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늦게 도착해서도 아니었다. 배가 없단다. 배가 부두에 정박해 있는데, 없단다. 승객이 없어 노선이 취소됐단다. 이해가 되었다. 배가 없어도 섬으로 갈 수 있다. 다리가 있다. 그런데 갈매기들은 어쩌나. 진해 속천항과 거제 실전항 사이의 갈매기들은 이제 새우과자는 다 먹었다. 자전거는 또 어쩌나. 배를 탐으로써 잠시 나와 동등한 여행자가 될 수 있는 내 자전거는 어쩌나. 그건 그렇고 여행 계획을 바꾸어야 할 판이다. 나는 길 위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다리로 건너가자! 자동차에 다시 자전거를 싣고 거가대교를 향해 달려갔다. 거가대교 통행료는 뱃삯보다 비쌌다. 거기다 자동차 기름값까지 있다.

    거제 칠천도는 거제가 섬이니 섬 속의 섬인 셈이다. 진해 속천항에서 다시 자동차를 달려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 하청면 실전리 실전항 위 칠천교 앞에서 자동차를 세우고 자전거로 갈아탔다. 칠천교를 건너기 직전 칠천량해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1957년 선조 30년 음력 7월 16일 거제 칠천도 부근에서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과 일본수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에 크게 패했으며, 그를 계기로 조선조정이 당시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제해권을 회복하도록 했다는 역사적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멀리 칠천도의 옥녀봉을 바라보며 칠천교를 건넜다. 나는 항상 그랬듯 섬의 왼쪽 방향을 돌 계획이었다. 칠천교를 건너면 바로 나타나는 장안마을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달렸다. 가을햇살은 따뜻했고 바다는 맑고 잠잠했다. 도로 아래 위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의 집들은 가을햇살을 받고 빛났다. 도로 위쪽으로는 간간이 고구마 수확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다는 맑고 잠잠했지만 수확이 끝난 고구마밭은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게 했다. 10분쯤 달려가자 옥계해수욕장과 칠천량해전공원이 나왔다. 여름 휴가객들이 떠난 쓸쓸한 해변을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해수욕장 캠핑장이 캠핑객들로 가득했다. 최근에 유행하는 캠핑 열풍을 느끼게 했다. 사진을 몇 컷 찍고 싶었으나 포기한다. 괜히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카메라를 대놓고 들이댈 수는 없었다.

    옥계해수욕장을 나와 달리다 도로변에서 한 외딴집을 발견했다. 그 집은 방금 막 페인트칠을 끝낸 것처럼 화사하게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집이 도로변을 끼고 가꾼 화단의 가을꽃들이 예뻐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느 샌가 할머니 한 분이 집에서 나와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나는 무엇을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무안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적이 당황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꽃씨를 따가라”며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할머니, 꽃씨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화제를 바꾸었다. “어디서 오셨소.” “예, 창원에서 왔습니다.” “창원에 우리 자식들이 사는데.” “그러세요…” 나는 말을 채 끝내지도 않고 서둘러 자전거에 올라탔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난 모양이었다. 섭섭한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할머니와 작별했다.

    몇 개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자 저 멀리 제법 넓은 백사장이 나타났다. 옆개해수욕장이다. 옆개해수욕장도 캠핑장이 있었고 캠핑족들이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밤 별이 쏟아져 내렸을 해변은 쓸쓸했다. 옥계해수욕장과 달리 해변은 넓었지만 북쪽에 위치해 있어 햇살이 덜 들어와 더 그랬다. 나는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소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백팩을 풀고 시집을 꺼냈다. 철 지난 해변에서 읽는 사랑의 시들은 따끈한 커피처럼 쓰면서도 달콤했다. 시인의 ‘시인의 말’이 내 가슴을 쳤다. ‘삶과 죄를 비벼 먹을 것이다. 세월이 내 뺨을 후려치더라도 나는 건달이며 전속 시인으로 있을 것이다.’ 나는 간밤의 내 죄를 생각했다. 가수 하림은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고 했지만 나는 잊을 수만 있다면 사랑을 죄로라도 잊고 싶다. 죄는 몸의 때 같은 것,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모든 사랑은 결국은 죄로 잊혀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랑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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