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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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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⑦ 중국 등충(騰沖)의 고도에서 만난 두 마리 물고기

2000년 전 공주는 차마고도 따라 이곳을 거쳐 갔을까
미얀마 국경에서 가까운 등충은
옛 차마고도와 실크로드의 기점이다

  • 기사입력 : 2013-11-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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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룡각 대문에 그려져 있는 두 마리 물고기.
    중국 등충(騰沖)현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산열해(火山熱海)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화산지열지대다.
    명나라 때 축조되고 1762년 청나라 때 재건된 도교사원 원룡각. 연못과 짙은 숲을 품고 있어 한 폭의 그림 같다.
    등충(騰沖) 일대 기념품점의 화산석으로 만든 물고기 기념품.



    나를 태운 차는 중국 작은 변경도시 후교의 새벽을 갈랐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두 마리 물고기를 찾아 미얀마와 중국의 곤명을 잇는 옛 차마고도와 실크로드의 기점인 등충(騰沖)현으로 서둘러 향했다. 3시간 남짓 비포장과 포장길을 달려 등충에 도착했다. 등충은 미얀마 국경에 가까운 남서변경의 요지로 미얀마와 교역이 이뤄지는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국민당정부를 원조하기 위해 미얀마~쿤밍(昆明) 간 수송로를 열었을 때 그 기점이 되었던 곳이다.


    등충은 중국에서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화산 분화구가 산재해 있고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질경관을 갖고 있는 곳 중 하나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냉각되고 응고되면서 크고 작은 97개의 화산 분출구가 새로 생겼다. 그 화산 위에 만들어진 도시가 등충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화산이 바로 대공산(大空山)이다. 나는 그곳에서 이 일대에 산재해 있는 화산의 장대한 파노라마를 하늘에서 담을 계획이었다. 다행히 이곳에는 열기구를 운영하고 있었다. 미리 입수한 여행안내서를 보고 열기구를 예약한 뒤 지체 없이 차를 불러 대공산이 있는 화산공원으로 향했다.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햇살이 좋아 차창을 손가락만큼 열어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피로한 얼굴을 애무하듯 감싸고 목덜미까지 흘러내린다. 난 끄덕끄덕 잠이 들었다. 잠결에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물끄러미 눈을 떴다. 어느새 나를 안내한 기사는 열기구가 있는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부는 바람을 부여잡으려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바닥을 내저었다. 그의 손짓은 바람 때문에 열기구가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신호였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차를 빌리고 계획했던 하루를 망친 생각을 하니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시간이 촉박한 탓에 점심도 거르고 달려 왔다가 사진 하나 맘껏 찍지 못한 채 카메라를 접었다. 결국 하늘에 뜬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하기로 한 등충의 파노라마는 포기해야만 했다.

    홀로 여행을 하면서 끼니를 찾아 먹기가 쉽지가 않았다. 바지가 헐렁해지고 얼굴이 야위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모처럼 만에 입에 맞는 탕수육을 만났다. 쓰촨성의 티베트 장족들의 전통주인 칭거주(보리의 일종으로 티베트인들의 곡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면서 고원의 붉은 볼을 가진 티베트 여인네를 향한 사랑의 정가 ‘고원홍(高原紅)’을 듣고 있자니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이곳의 일기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취기가 올라 마음을 비우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남은 시간은 관광객이 되기로 했다. 나는 화산으로 만들어진 유황 온천으로 향했다. 20여㎞를 달려 열해(熱海)의 계곡 안으로 접어드니 발밑에서 지열이 느껴지고 바지가 젖을 정도로 땀에 젖었다. 짙은 유황냄새와 함께 온천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화산석 바위 구멍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는 금세라도 폭발할 듯 멈출 줄 몰랐다. 나는 모처럼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날 밤, 마음 한구석은 김해로 향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는 생각에 잠을 뒤척였다.

    새벽 공기는 가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밤에는 별이 총총한데 비가 내린다. 열기구는 이튿날에도 무용지물이었다. 아쉽지만 해가 뜨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한정된 시간, 제한된 경비에 주어진 역할도 해야 하기에 이곳에 오래 머무를 처지도 아니다. 아쉬운 대로 비 내리는 대공산을 다시 찾았다. 대공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화산석을 다듬어 길을 만들어 놓아 화산지열지질 공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헐떡거리면서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올랐다. 화산공원으로 조성된 대공산 정상까지 화산석을 깔아 길과 계단을 조성했지만 힘겹게 오른 화산 분출구는 운무에 가려 화산이 연출하는 장관을 온전히 볼 수 없었다.

    발길을 돌려 화산석과 옥으로 만든 기념품 상점들을 기웃거렸다. 모든 상점들은 이곳이 미얀마에서 보석을 수입하고 중국의 옥 산지로도 으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날임에도 옥과 화산석으로 만든 기념품이 좌판에 가득 깔렸고 상인들은 지나는 여행자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중국인들은 옥을 사랑하면 건강을 지켜주고 영혼을 맑게 만들며, 옥으로부터 덕성까지 얻는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많은 중국의 부호들이 옥을 구하러 이곳을 방문하고 화산이 만들어 낸 온천을 찾아 그들만의 여유를 즐긴다고 한다.

    서기 48년 아요디아의 공주 허황옥 일행도 당시 금수능라 필단, 금은, 보화, 장신구, 노리개 등을 혼수 예물로 철기문화가 막 시작되는 가야로 가져왔다. 그녀가 가지고 왔다는 옷과 비단을 비롯한 예물들은 인도 중국 실크로드를 거쳐 교역이 되던 물건들이지만 그의 예물 중에는 주옥(珠玉)이 있었다. 옥으로 만들어진 구슬과 노리개 등 보화들은 그녀가 이곳을 거쳐 가면서 그녀의 예물로 혼수에 포함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전설 같은 옛 이야기를 생각하면 허황옥의 영원한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이 여행길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홀로 하는 여행길도 외롭지 않았다.

    또 다른 상점으로 눈을 돌리자 화산석으로 다듬어 깎아 만든 물고기가 나를 빼꼼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요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남긴 흔적과 다르지 않았다.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이정표 삼아 여행하는 내게는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나는 마치 긴 여행 끝에 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떨어져 있던 둘을 서로 마주보게 세워 주었다. 서로 마주 보는 두 마리 물고기가 된 두 마리 물고기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서로를 바라보면서 포에버 로맨스 로드의 이정표가 되었고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사랑하는 연인의 품으로 안기길 바라는 마음을 남기고 돌아섰다.

    두 마리 물고기 흔적을 찾아 시내에서 가까운 등충의 고도 민속촌 화순향(和順鄕)으로 향했다. 농촌이 펼쳐지는 듯하더니 호수가 보이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너머로 고도의 풍미가 느껴지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잿빛 기와를 켜켜이 얹은 정자와 누각들은 한눈에 천년 고도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화순향을 살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도 서역의 물건들이 곳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옛 실크로드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욱 호기심을 갖고 지도를 펼쳤다. 먼저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의 역사추적 시리즈 ‘허왕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에서 발췌한 메모를 보고 도교사원 원룡각(元龍閣)을 찾았다. 연못과 같은 호수를 끼고 걸었다. 청(淸)나라 때 축조되었다는 쌍홍교를 넘어 호수를 끼고 명(明)나라 때 축조되고 청(淸)나라 때 재건된 원룡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호수가 끝나갈 무렵 용담이라는 연못을 만났다. 원룡각은 연못과 녹음이 짙은 숲을 품고 완벽한 구도로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2000년 전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한참을 숨이 멎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두 마리 물고기가 평화롭게 마주보고 있는 원룡각의 문설주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김해로 향하는 포에버 로맨스 로드를 실크로드만큼이나 대중성 있게 멋진 길로 펼쳐보고 싶다는 충동이 나의 가슴을 때렸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여행자의 로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순간이었다.

    옛 실크로드의 선상에 있던 등충의 고도, 화순향의 원룡각 대문에 그려져 있는 두 마리 물고기는 포에버 로맨스 시티, 김해 김수로 왕릉의 문설주에 그려진 문양과 다르지 않았다. 두 마리 물고기는 이곳에서 서로 마주 보며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글·사진=남기환 (여행작가·사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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