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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김시탁

  • 기사입력 : 2013-11-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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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 마음을 다쳐 상처 난 마음을 버릴 곳 없는 자는 마라도로 가라 모슬포항에서 뱃길로 30리쯤 더 남으로 들어가면 상처받은 사람들을 업어줄 움츠린 등 넓은 섬 하나 있다 그 섬에 뱃머리가 닿으면 제일 먼저 바람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주고 바람이 등 떠미는 곳으로 올라가라 올라간 그곳에 절벽이 있다 그 위에서 아래로 던져진 마음을 보라 허옇게 뼈까지 부서진 사랑을 물어뜯는 파도가 있다 추락한 꿈들이 뇌사상태일 때 마라도의 배들은 고동을 울려 그 영혼을 달랜다 무엇이든 끝에 서본 자만이 시작을 꿈꿀 수 있다. - 시집 ‘봄의 혈액형은 B형이다’ 중에서

    ☞ 지독한 상처로 인해 마음을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겠지요. 상처를 받은 시인은 목적지도 없이 마라도까지 흘러가게 되었나 봅니다. 그곳은 더 이상 흘러갈 수 없는 한계 지점입니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마라도는 시인의 다친 마음을 다 받아주네요. 인간에게 받았을 상처를 자연에게서 치유받는 과정입니다.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고 통과시켜 주는 ‘바람’과 ‘허옇게 뼈까지 부서진 사랑을/ 물어뜯는 파도’가 있으니 시인은 그곳에서 자신의 사랑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을 테지요. 파도에 흔들리며 ‘꿈들이 뇌사상태일 때/ 마라도의 배들이 고동을’ 울립니다. 추락한 사랑, 추락한 꿈들에 대한 진혼곡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가입니다. 이런 과정을 다 통과한 후, 시인의 영혼은 다시 태어납니다.

    바람, 절벽, 파도, 뱃고동이 차례로 위안과 용기를 주는 마라도. 마치 조력자의 도움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재탄생하는, 신화의 주인공을 보는 듯합니다. 생의 벼랑에 선 기분일 때 시인처럼 마라도에 가봐야겠습니다. 그 섬의 ‘넓은 등’에 업혀보고 싶습니다. 맹수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혹독하게 야단을 친 후 껴안아 주는 섬. 그곳에 가실 분은 잊지 마세요.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꼭 지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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