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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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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천천히 하나하나- 이훈호(극단 장자번덕 대표)

천천히 보고 행할 때 목표지점 정확하게 볼 수 있어

  • 기사입력 : 2013-11-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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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은 내적 동기가 충만할 때, 즉 말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순간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야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대사나 감정을 단순하게 외워서 하게 되면 긴장과 밀도가 없어집니다. 연극이 재미없게 되는 이유가 되지요.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내적 동기와 욕구를 생각의 큰 뼈대로 삼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말과 행동을 정확하게 하나 하나 엮어나갈 수만 있다면, 순간의 시간들이 쌓여 고밀도, 고품격 감동이 인물 관계 혹은 극적 사건으로 연출되어집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속에 순간을 살아 사는 법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천히’라는 시간 개념이 무색한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광속의 시간흐름을 더 빠르게 뚫고 나아가야 한다는 욕망들로 날선 칼날이 되어 맞바람을 맞으며 달려갑니다. 맞바람은 결국 감속의 원인이 되고, 뜻하는 목표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상실시킵니다. 결국 구체적이지 않은 덩어리로 된 문제나 감정들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합니다.

    맞바람을 맞지 마십시오. 살짝 비켜서서 천천히 하나하나를 보고 행할 때 유연하고 이성적 사고가 살아나고 목표지점을 더 정확하게 보게 됩니다.

    지리산 둘레길 힐링 걷기 대회, 천천히 걷는 제주 올레길, 부산 갈맷길, 강원고성갈래 구경길. ‘웰빙과 힐링’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과연 걷기 열풍의 시대입니다. 우리 선조들에게도 ‘걷기’는 삶의 뜻을 새기고 걸음마다 깨달음을 구하고 마음을 닦는 수행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뒷산을 오르내리며 나름의 걷기운동으로 발바닥 명상을 실천 중입니다. 순간을 살아 사는 법, 하나하나를 지키는 법을 연습합니다.

    우선, 벅찬 일상의 근심 걱정을 발바닥으로 내려놓고 천천히 한걸음을 내디뎌 봅니다. 발바닥이 땅 아래로 박히고 그 속 저 깊은 기운을 빨아올립니다. 그 힘을 받아 다시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다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소중하게. 불현듯 떠오르는 잡념들로 산을 오르는 내내 하나하나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눈이 열리고 시원한 시야로 세상과 만나게 됩니다. 오감이 열리고 숨은 온전히 자연과 함께합니다, 몸과 마음의 자유인이 되어 춤이라도 절로 나올 듯합니다.

    순간을 살아있는 그때, 비로소 땅에 발 붙이고 서서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는 순간입니다. 세상살이는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끼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 아닐는지요?

    개운한 기분으로 산을 내려와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발바닥 명상을 통해 느꼈던 살아있는 순간들은 쉬이 잊혀집니다. 걱정은 없습니다.

    다가오는 날 다시 산을 오를 것이고, 그렇게 하나 하나 천천히 연습하여 몸에 쌓여가다 보면, 나의 온전한 근원으로 세상의 본질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천천히 하나, 하나.


    이훈호 극단 장자번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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