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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72) 김참 시인이 찾은 김해 서낙동강

강변을 끼고 펼쳐지는 늦가을은
아름다운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 기사입력 : 2013-11-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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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꽃.
    김해와 부산의 경계가 되는 샛강. 강변의 텃밭엔 푸성귀가 자라고 있다.
    강을 돌아다니는 물오리들.
    샛강과 신어산 풍경. 마을 아이 몇이 강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늦가을 강의 빛깔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다. 해를 등지고 서서 선암다리 쪽을 바라보면 강은 깊은 가을 하늘의 고운 빛을 그대로 담고 있고, 해를 마주하고 서서 강을 바라보면 강은 햇살에 빛나는 은빛의 잔물결들을 보여준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낙동강 강변은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다. 나는 이 강변의 산책로를 좋아한다. 한산한 찻집과 장어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과 마을 옆의 강변 산책로. 나는 바람을 쐬거나 차를 마시러 자주 이곳에 나온다. 언제나 그렇지만 강변 산책로는 무척 한산하다.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쌀쌀한 늦가을에 강변 산책을 나와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천천히 강변을 걸으며 둘러보니 강변의 풍경은 놀랍다. 단풍이 든 가을 산처럼 가을빛으로 물든 강변의 색깔도 환상적이다.

    강에 닿은 좁은 땅은 주인이 없다. 주인 없는 땅에 누군가 텃밭을 일구고 파와 배추 같은 푸성귀들을 심어놓았다. 강변을 산책하다가 마주치게 되는 콩, 옥수수, 고구마, 부추, 가지, 무 같은 푸성귀들이 그곳의 주인이다. 그들은 낮에도 밤에도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지키고 있다. 강변엔 버드나무들이 많다. 버드나무도 푸성귀들과 함께 강을 지켜보고 있다. 한여름의 산책에서 버드나무는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었다. 나는 버드나무 아래 서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곤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한여름에 이곳을 자주 찾아왔다. 강바람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파란 강의 빛깔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물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름밤 마실 나왔다가 강변 산책로 반대편 밭에 핀 흰 국화들을 본 적이 있다. 달빛 아래서 국화꽃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던 기억이 난다.

    평일의 늦은 점심을 먹으러 종종 찾아가는 길가의 작은 추어탕집 근처에 잠시 서서 쉰다. 이 추어탕집 옆의 작은 다리 하나를 경계로 저쪽은 부산이고 이쪽은 김해다. 신어산에서부터 흘러내려와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개울물이 부산과 김해의 경계가 된다. 그러나 개울을 흘러가는 물은 부산과 김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물은 방랑자다. 개울물은 흘러서 서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서낙동강 강물은 녹산 수문을 지나 남해로 흘러갈 것이다. 개울가의 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모두 가을의 빛을 담고 있다. 이 작은 개울엔 제법 큰 물고기들도 산다. 봄이면 따사로운 봄 햇살 받으며 나는 개울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물고기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몇 해 전까지는 집에서 열대어와 민물고기를 길렀다. 그 때문인지 요즘도 꿈에서 종종 물고기들을 보곤 한다. 물고기가 나오는 꿈은 참 이상하다. 나는 브리샤르디, 블랙 칼부스, 라이언헤드 같은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열대어들이 냇가에서 헤엄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이상한 꿈속에서 나는 항상 냇가에 발을 담그고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하늘거리는 지느러미를 바라본다. 나는 우리나라 냇가에 웬 열대어들이 이렇게 헤엄치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어떨 때는 그게 꿈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나는 커다란 어항이 여럿 있는 방에 있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내가 꾸는 꿈속의 어항이 많은 방은 내 방과는 다르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곳이 내 방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몽롱한 지점에 서 있다. 그 몽롱한 지점에 서 있는 나는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개울물처럼 방랑자다. 꿈속에도 속하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나그네다.

    가을 강은 아름답다. 바람이 크게 불어서 강변의 갈대들이 휘청거린다. 마을 아이 몇이 초록 풀과 갈대가 있는 강변에 서서 낚시를 하고 있다. 이런 사소한 풍경들 때문에 가을 강은 더 아름답다. 눈길이 가 닿는 모든 곳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포장되지 않은 길 옆 전신주 위에 하얀 구름이 떠있다. 나는 이 길을 따라 꽤 멀리까지 걷곤 했다.

    강변은 조용하다. 강을 보며 걸을 때 종종 물고기들이 튀곤 했는데, 오늘은 나를 반기는 물고기들이 없다. 대신 바람에 몸을 흔드는 갈대들이 나를 반겨준다. 노란색 갈대들과 초록의 버드나무, 파란색 강물, 그리고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과, 파란 가을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 그리고 갈대밭에서 들리는 물새 우는 소리, 이런 것들이 사람들 붐비는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서낙동강은 원래 낙동강의 본류였다. 그러나 대저 수문과 녹산 수문이 생기면서 본류가 동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서낙동강은 낙동강 하류의 지류가 되면서 선암강 혹은 불암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낙동강은 동쪽의 본류와 달리 아늑하고 운치가 있다. 강폭이 그리 넓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물살이 비교적 잔잔해서 호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강 위에 물오리들이 떠 있다. 물과 한 몸이 되어 둥둥 떠다니는 저 물오리들, 바람에 따라 잔물결을 일으키는 강, 그리고 강 건너 보이는 작은 집들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 같다. 나는 강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하얀 꽃 만발한 갈대들이 불어오는 강바람에 모두 한쪽으로 몸을 눕히고 있다. 정말 장관이다.

    갈대밭 가까이 다가가 사진 몇 장을 찍어본다. 갈대밭의 이 놀라운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갈대밭 너머의 강이다. 그리고 한쪽 방향으로 몸을 눕힌 갈대들이 강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이런 풍경들 때문에 멀리 보이는 집과 산도 아름다워 보인다. 멀리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고 고요한 법이다. 물오리가 떠 있는 강과 강 건너편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몇 년 전 봄에 나는 서낙동강 근처의 샛강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봄꽃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는, 작은 집들이 몇 채 있는 마을을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마을이었다. 봄꽃 향기와 마을에서 느껴지는 따듯하고 아늑한 기운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마을의 개울 옆에 한참 서서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한동안 그 마을을 잊고 지냈다.

    올 초에 그 마을을 다시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몰고 한나절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을을 찾을 수는 없었다. 장유 근처를 흐르는 샛강 옆에서 비슷한 마을을 찾긴 했으나 전에 보았던 그 마을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마을은 봄이 와야 찾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꽃 피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찾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차갑다. 나는 발길을 돌려 천천히 걷는다. 물오리 몇 마리가 물을 차고 날아오른다. 물오리 돌아다니는 저 강 속에서 내가 꿈에서 만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강가의 갈대밭을 한바탕 흔들고 간다. 흔들리는 갈대꽃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잘 가라고 작별을 고하는 것 같다. 강의 잔물결들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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