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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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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⑧ 대리(大理)에서 만난 여인

호숫가 여인, 사랑길 밟는 여행자에 미소를 보냈네
대리의 ‘이해 호수’에서
물고기 비호를 받고 있는

  • 기사입력 : 2013-11-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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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대리의 이해 호수에서 물고기의 비호를 받고 서 있는 여신상. 운남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백족의 여신이다.
    이해 호수의 누각까지 연결된 교각 대리석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 문양.
    두 마리 물고기를 찾아 배봉산의 배봉사로 향하다 만난 폭포.
    대리는 해발고도 2086m에 있는 오래된 도시다. 송나라 때 대리국이 이곳을 도읍지로 삼아 도시 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인 형태다.


    미얀마를 넘어 등충(騰沖)의 고도, 화순향(和順鄕)의 원룡각(元龍閣) 대문에 그려져 있는 두 마리 물고기를 보며 잠시나마 안락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대리(大理)로 향했다.

    대리는 쓰촨성의 주도인 성도(成都)를 만나는 길목이다.

    그리고 대리에서 성도를 지나 양자강(揚子江)을 중심으로 발달한 중경(重慶) 방향으로 서너 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 보주 태후의 고향인 안악현을 만나게 된다.

    나는 여행 출발 전부터 대리를 관심있게 보았다. 자료를 조사하다가 뜻하지 않게 이곳 이해 호수를 여행했던 여행자의 블로그에서 두 마리 물고기가 한 여인을 떠받들고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 호수의 여인상은 인도의 아요디아에서부터 김해까지 연결되는 허황옥의 영원한 사랑의 비밀 코드, 두 마리 물고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한정된 시간에 여행을 할지라도 계획된 곳들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대리도 아요디아에서 ‘Forever romance city’인 김해로 향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등충에서 마지막 배차버스를 이용해서 다섯 시간 남짓 달려서 대리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2086m의 고지에 있는 이해 호수를 끼고 발달한 오래된 고도, 대리는 중국의 우수 관광 도시로 손꼽히고 있고 대리석 산지로도 유명하다. 대리석이라는 명칭도 이곳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당나라 때에는 남조국(南詔國), 송나라 때에는 대리국의 도읍지로 번창했다. 이곳에 도착한 날은 중국 국경절과 겹쳐 많은 내국 관광객 때문에 온전한 고도의 풍취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등충과 야안(雅安)의 고도처럼 대리고성(大理古城)도 옛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그때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었다.

    대리고성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이해 호수를 찾았다. 이해 호수를 향하는 내내 비가 제법 내렸다. 호숫가에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고 화덕에 얹혀진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용기에서는 물고기와 함께 갖가지 튀김들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기름 튀는 소리는 추적거리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귀를 홀리고 형형색색 조개껍데기로 만든 기념품들은 눈을 즐겁게 했다. 비도 내리고 두 마리 물고기가 받치고 있는 사진 속 여인이 있는 곳도 물어볼 겸, 나는 튀김이 가장 잘 익어가는 좌판에 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맥주도 한 병 시켰다. 커다란 물고기 튀김과 맥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살짝 취기가 오를 즈음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내리는 빗속에 홀로 선 여인이 보인다. 여신상은 무릇 나약한 여성들을 위한 투쟁을 하다가 승전보를 울린 여전사처럼 늠름해 보이기도 했고 호수의 여신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도 보였다.

    나는 비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몸을 일으켜 여인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고기의 비호를 받고 있는 듯한 여인을 만났다. 호수를 배경으로 선 여인은 홀로 걷는 이의 쓸쓸한 마음을 읽었는지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영원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고단한 방랑자를 품에 안으려는 듯, 영원한 사랑의 화신처럼 온화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미소는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난 이 여인이 왜 여기서 물고기의 보호를 받으며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경솔하게 짐작할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단정한 이 여인을 허황옥이 남긴 발자취의 흔적이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흘려 넘길 만한 단순한 여인상도 아니었다. 물고기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여인상은 이곳 백족의 여신이었지만 ‘Forever romance road’ 인도의 아요디아부터 김해까지 물고기를 신성시하는 문화코드는 같았다.

    약간의 취기로 빗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치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만난 나의 영원한 별과 같은 친구를 품에 안듯, 그녀를 카메라에 담고 한참을 그녀의 발끝에 기대어 서서 내리는 비를 피했다.

    나는 이해 호수의 여신상과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호숫가를 산책하듯 걸었다. 호수 가운데 자리 잡은 누각까지 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길을 따라 들어가서 호수를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들고 있던 우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나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여행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두 마리 물고기가 호수를 유영하듯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리춤까지 올라온 대리석에 두 마리 물고기가 조각돼 있었다. 기록도 자료도 없던 대리, 이곳도 Forever romance road, 허황옥이 가야로 향하다 머문 영원한 사랑의 길목이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신비스럽게도 두 마리 물고기는 인도의 아요디아부터 김해로 향하는 도시마다 그림이나 조각, 혹은 조형물로 남겨져 있었다. 여신상도 아요디아에서 김해로 떠난 허황옥 공주와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영원한 사랑의 화신을 만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성도에서 서쪽으로 위치해 루딩과 캉딩의 고원을 거쳐서 티베트로 향하는 차마고도의 중요 시작점이자 분기점인 야안으로 향했다. 성도시(成都市)와의 거리는 133㎞로 티베트과 운남(雲南)으로 통하는 도로의 분기점을 이룬다. 이곳만 지나면 허황옥의 고향인 안악현으로 이어진다.

    야안에서 상리고진(上里古鎭)은 청나라 시대 차마고도의 경유지로서 마방의 역할을 하면서 생겨난 대표적인 차마고도의 마을이다. 이곳도 명·청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목조 고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옛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그곳을 빠른 걸음으로 돌아보고 오래된 사찰이 있는 인근의 배봉산(拜峰山)으로 향했다.

    내가 배봉산을 찾은 것은 오래된 사찰에서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찾을 생각에서였다. 야안에서 조금 떨어진 배봉산으로 향하는 협곡은 옛 차마고도의 길목이었다. 나는 협곡을 따라 걸었다. 계곡은 생각보다 길고 깊어서 무려 네 시간을 걸었다. 가파른 길목이라도 만나면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가 지쳐 주저앉을 만하면 눈에 들어오는 입간판이 있었다. ‘이 맑은 공기는 모두 무료입니다.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나는 맑은 공기나 실컷 들이켜자는 심사로 힘든 걸음을 달랬다. 사실 비싼 관광 입장료를 주고 들어왔으니 그 문구는 거짓말이었다. 계곡이 깊어 하늘의 구름도 보이지 않고 부는 바람도 없었지만 물도 맑고 공기는 쾌적했다. 그것만으로도 도시를 멀리한 맑은 자연에 감사를 해야지 않는가? 난 긴 호흡을 하고 옛 마방꾼의 고된 노정을 느껴보기로 하고 점점 깊은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눅눅한 숲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물줄기에 눈이 시들해질 즈음이면 폭포들이 나타나 눈요깃거리가 됐다. 한참을 걸으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카메라가 어깨를 짓누르는 게 무겁게 느껴진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계곡으로 빠져들어갔다. 협곡 아래 금세 굴러떨어질 만한 바위 틈바구니의 높고 가파른 길은 옛 차마고도 마방꾼의 흔적을 느끼게 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멘트로 만든 난간과 잘 정돈된 길은 오히려 옛길을 손상시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하지만 옛 마방꾼의 흔적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방꾼의 소금기 젖은 애환은 지금도 걷기 싫어하는 관광객을 둘러멘 가마꾼의 흐르는 땀에서 그리고 거친 숨소리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오래전 교역하던 소금과 차 대신 가마에 누워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어깨에 메고 있다. 그들의 지치고 힘겨운 숨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배봉사(拜峰寺)에 도착했다. 배봉사는 청나라 때 지어진 사찰로 깊은 숲속에 비밀스럽고 신비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불화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하지만 두 마리 물고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늦은 시간 손전등도 준비를 못한 처지라 급히 산을 빠져나와야 했다. 계곡이 깊은 탓에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계곡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작정하고 찾아 나선 곳에서 두 마리 물고기를 만나지 못한 날은 이유 없이 피로한 밤을 맞았다. 그날 밤은 잠들기 전까지 가파른 숲속에서 만난 가마꾼의 어깨가 눈에 어른거렸고 힘겨운 거친 숨소리도 귓전에 맴돌다 사라졌다. 진정 내 몸 하나도 버거운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죽은 것처럼 잠이 들었다.

    글·사진=남기환(사진작가·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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