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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김명희

  • 기사입력 : 2013-11-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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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싹 마른 비명의 돌기가 솟구쳤다

    탄식과 울음의 불바다

    화부는 단내 나는 화덕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쇳소리 여운 뒤엔 긴 묵음이다

    체념의 눈빛들이 전광판 모서리로 달려갔다

    아무리 외진 몸이라도

    벗어 놓고 지나갈 수 없는

    1시간 30분, 저 절대의 시간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고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끙끙대는 동안

    눈동자 으깨진 버찌의 시간이 지나갔다

    한 생이 하얗게 지나갔다

    단 한 줄도 받아 적을 수 없는 몸의 언어를 따라

    먼지 냄새 가득한 이 불의 시간, 이불처럼 덮고

    깜박 졸고 있으면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리라 그렇게

    잊히리라

    - <경남여류문학> 제23호 중에서



    ☞ 화장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다 태우는 데에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사실, 이 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비명’과 ‘탄식과 울음의 불바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가족이지만 화장장에서는 ‘체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운명의 문이 닫히는 듯 ‘화덕 문’이 닫히면 그뿐,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지독한 무기력 앞에서 ‘전광판’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애틋한 가족이 ‘저 절대의 시간’을 통과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한쪽에서 몸을 태우고 있을 동안, 마음은 ‘무릎을 꿇고/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끙끙’댑니다.

    ‘눈동자 으깨진 버찌의 시간’, 마치 일생을 한 줄로 요약하는 듯 ‘한 생이 하얗게 지나’갑니다. 그 순간에도 지독한 무기력을 ‘이불처럼 덮고’서 졸음에 빠지네요. 죽음의 거울에 비춰보는 삶의 현장입니다. 완벽하게 슬퍼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밥은 먹어야 하고 잠은 쏟아지는 법이니까요. 장례의식이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죽은 가족은 서서히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시간의 폭력에 휘둘리며 살아왔던 생애가 단 ‘1시간 30분’ 만에 사라지던 모습은 가슴에 화인으로 남겠지요.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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