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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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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진해경찰서 외사계 강미진 경장

“베트남댁·일본댁 찾아다니며 이들의 정착 돕는게 제 일이죠”

  • 기사입력 : 2013-11-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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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무복을 입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경찰이란 걸 알아챌 수 있었을까.

    모든 경찰이 냉철하고 강인한 인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친절함과 꼼꼼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그의 미소와 말투에서 왠지 교단에 선 교사나 교수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한국어를, 한국에 돌아와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던 대학 강사였다.

    대학 강단에서 내려와 경찰이 된 주인공은 진해경찰서 정보과 외사계에 근무 중인 강미진(42) 경장. 스스로도 본인이 경찰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는 그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경찰복을 입고서도 친근함으로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속을 파고드는 강 경장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남댁 마실 가는 게 주 업무

    지난 19일 오후 4시 창원시 진해경찰서. 주부라면 저녁 찬거리를 준비할 시간에 베트남 출신 귀화인 주은혜(26) 씨와 한국 생활 15년차인 미치요 코이케(40) 씨는 경찰서로 다소 늦은 마실을 나왔다. 이들이 만나러 온 사람은 진해경찰서 정보보안과 외사계에서 다문화 치안업무와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강 경장이다.

    “제 업무란 게 딱딱하게 들려도 사실은 이동 베트남댁, 자은동 일본댁네에 마실 다니며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는 일이죠. 다른 이주 외국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려주고 있어 제게는 꼭 필요한 이들입니다.”

    강 경장은 진해지역 2700여 명의 결혼이주 여성과 외국인 근로자와 650여 다문화가정의 치안업무를 맡고 있다. 담당 인원이 많아 혼자서 모두를 살필 수 없었다. 강 경장에 힘을 보탠 이들은 외국인 명예경찰대원이다. 1남 2녀를 둔 대한민국 아줌마이기도 한 강 경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명예경찰대와 소속 이주 여성을 정보원(?)으로 흡수했다고 한다.

    외국인 운전면허교실과 범죄예방교실에도 출강하고 있는 강 경장은 수사업무만큼 이주 외국인들의 한국 적응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 이제는 하루에도 수차례 이주민들의 민원상담전화를 받고, 타 지역에서도 찾는 등 진해지역 외국인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고 있다.


    ◆베트남으로, 다시 한국으로

    “베트남전에 한국은 많은 군인을 보냈고 서로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을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전쟁의 빚을 갚고 싶어 떠난 봉사활동이 베트남과 첫 인연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강 경장은 졸업 후 2001년 31살의 나이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호찌민대 한국어학과 강사가 돼 학생을 가르쳤다.

    강단에 선 2년여간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내고 2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 베트남 대학생들을 보며 한국어 교육봉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했으며, 강의를 마친 후에는 하루 6시간씩 베트남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이어 2004년에는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라오스로 건너갔고, 2005년에는 동독대학(라오스 국립대학)에 한국어 학과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때부터 베트남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죠. 한국에 결혼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갈수록 심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강 경장은 이들과 함께 2005년 한국으로 다시 건너왔다.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유행했던 무렵이다.


    ◆외사계 통역 인연, 경찰 지원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에는 경인여대에서 베트남 유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이 무렵까지도 강 경장은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 통역을 맡거나 이들이 많이 오는 교회에서 언어교육 봉사를 했을 뿐, 스스로 경찰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처음 경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경기도 김포에서 베트남 유학생이 성폭력을 당한 사건에 통역을 맡으면서였다.

    강 경장은 “피해 여학생이 한국어가 서툴고 같은 베트남인에게 통역하며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부끄러워 해 제3자로서 첫 통역을 맡았다”며 “경찰이 쓰는 전문용어를 통역해야 하고 피해 여학생이 당황해 횡설수설할까 봐 걱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민간 통역 요청이 점점 늘면서 경찰과 함께 동남아인 도박장을 잠복해 덥치기도 하고 베트남 출신 컴퓨터 상습절도범을 잡는 데 공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강 경장은 “외국인 범죄자들이 한국어를 모르는 체하면서 자국어로는 말을 이리저리 돌리고 진술을 뒤엎기도 하는 것을 보며 어학에 능통한 외사경찰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이후 2009년 외사 특채에 지원, 늦은 나이에 진해로 발령을 받았다.


    ◆아줌마 외사경찰의 꿈

    강 경장은 처음 진해 웅동파출소로 발령받은 후 외사 수사도 많이 했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한 일은 외국인 노동자 간 다툼과 갈등을 풀어주거나 생활민원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지난 3월 경남에서 유일하게 ‘경찰청 채용 홍보 원정대’ 요원 10인에 뽑혀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가 되고 싶은 것은 본연의 ‘친절한 경찰’이다.

    강 경장은 “외사업무 역시 수사업무만큼 범죄 예방과 치안 활동이 중요하다”며 “친절함으로 이주 여성들과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의 정착을 돕는 일이 외사사건을 줄이는 첫걸음이다. 잘 정착한 선배 이주민들이 많아야 한국에 새로온 외국인들도 문제를 덜 일으킨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진해의 이주 외국인들의 이장 노릇을 하며 이들의 정착을 돕는 것이 강 경장이 끝까지 가고 싶은 길이다.

    글= 원태호 기자

    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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