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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나라 망신시키는 한국인 아버지와 코피노 문제- 허영희(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3-11-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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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들어 한국 남성들이 버린 필리핀의 코피노 문제가 반한 감정으로 이어져 국가 간의 갈등, 나아가 국제사회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 있어서 염려스럽다.

    코피노(Kopino)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일컫는데,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1000명에서 2000명 정도에 불과한 코피노가 최근 10년 사이 2만 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코피노가 급증한 이유는 필리핀에 머무는 한국인이 많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1년 25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관광객과 유학생, 해외 파견근로자들이 2012년에는 103만 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지에서 첩을 두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최근에는 원정 성매매에 나선 남성들이 비싼 화대를 지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결혼을 미끼로 성관계를 맺다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게다가 필리핀은 낙태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원하든 원치 않았든 만들어진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 없이 남겨진 필리핀 현지 여성과 코피노들은 한부모 가정이라는 낙인과 함께 양육비 등으로 말할 수 없는 생활고를 겪고 있다.

    급기야 필리핀 여성단체들이 코피노 아버지로부터 양육비를 받기 위해 집단소송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필리핀 정부도 공식적으로 코피노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소송대표자의 말에 의하면, 필리핀에는 코피노 외에 다른 나라 혼혈아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 남성들은 자기 아이의 존재를 안 이상, 양육비를 보내거나 자국으로 데려가서 부양을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독 우리 한국 남성들은 아이를 버려두고 꽁무니를 빼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서는 한국 남성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코피노 문제는 일부 한국인 남성들의 그릇된 성 인식과 무책임한 행동의 산물이다. 나라 망신을 시키는 무책임한 코피노 아버지들은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코피노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져, 결국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코피노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다문화가족지원법은 한국 국적을 가졌거나, 국내에 거주하는 혼혈아동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어서, 코피노들은 아예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국적법에서 국적 취득의 요건을 완화한다고 해도, 아버지를 찾지 못하는 코피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코피노를 지원하는 민간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지속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지원도 미미한 수준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다르다. 일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의 2세를 자피노라고 하는데, 일본은 자피노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미 20년 전부터 아버지 찾기 운동을 시작했고,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자피노를 비롯한 해외에 거주하는 혼혈아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관문을 낮췄다. 4년 전에는 국적법을 개정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요건을 완화했다. 자피노들과 현지 필리핀 여성에 대한 민간 부문의 지원도 조직적·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기업들은 정부정책을 반영하여 자피노들을 우선해 채용하고 있다.

    코피노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발생될 수 있는 글로벌한 다문화 혈연 형성 과정이라고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또한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면서 덮어두고 갈 문제는 더욱 아니다. 한국 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코피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코피노의 아버지들은 지금이라도 자식을 찾아나서는 것이 사람의 도리 아닐까?

    허영희 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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