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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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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⑨ 비밀의 코드, 두 마리 물고기

옛 보주 땅, 허씨 집성촌서 발견한 그녀의 흔적

  • 기사입력 : 2013-11-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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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안악현의 서운향에 ‘보주태후 허황옥의 고향’이란 한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서운향의 큰 바위 아래에는 신령스러운 우물터 ‘신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두 마리 물고기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양쯔 강의 본래 명칭은 장강(長江)이다. 전체 길이는 6300㎞이며, 강줄기를 따라 명승고적이 즐비하다.
    남기환


    나는 2000년 전 김수로 왕비 보주 태후, 허황옥의 고향으로 명명된 보주로 향했다. 보주는 지금의 사천성 자양시에 있는 안악현의 옛 지명이다. 성도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남짓 달려 안악현 버스터미널로 갔다.

    중국의 사천성은 내가 즐겨 찾는 여행지였다. 특히 사천성 서부, 사천 고원은 6000~7000m가 넘는 고산을 볼 수 있고 10월이면 눈 덮인 설원이 펼쳐진다.

    반대로 성도 동남쪽에 안악현으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고 완만한 구릉이 끝없이 펼쳐졌다. 달리는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편지를 쓰다 보니 어느새 안악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그곳에서 현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허 씨 집성촌이 있는 서운향으로 향하는 두어 시간 동안 달리는 내내 레몬나무가 처음부터 끝까지 푸르게 펼져쳤다.


    보주 태후 허황옥의 고향 서운향에는 보슬비가 내렸다.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레몬나무가 즐비했는데 서운향만은 레몬나무 대신 논에 벼가 심어져 있었다. 마을 어귀에는 중국식 현대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길을 따라 푸른 대나무숲 쪽으로 향해 들어가자 작은 구릉 아래 시골집 몇 가구가 있었다. 집집마다 흙으로 빚어진 황톳빛 담장에는 마른 수수짚단이 세워져 있었다. 켜켜이 쌓인 검은 기와지붕 아래에 한 늙은 노인이 채소를 다듬고 있었고 그 앞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턱을 괴고 앉아 있다. 그 초가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동산에 올랐다. 작은 둔덕을 따라 도랑이 난 손바닥만한 콩밭과 고구마 줄기가 얽혀 있는 작은 밭을 보니 어린 시절 외갓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 어귀를 서성이는데, 한 노인이 한눈에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임을 알았는지 나를 그곳의 촌장인 허평(48) 씨에게 안내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허평 씨의 중국어 안내가 시작되면서 내가 이국의 시골에 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 서운향은 우리네 시골과 다르지 않았다.

    허평 씨는 먼저 허황옥 사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마을 안에 있는 허 씨 사당으로 들어갔다. 사당은 일반 여염집과 다르지 않았다. 문지방을 넘자 단아한 규수가 앉아 얼굴에 분을 바르고 치장을 했을 법한 반닫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방 한편에는 그 옛날 여염집 규수의 침실이 있었다. 침상은 낡아 해지고 구석구석 먼지가 앉아 있었다. 오래된 고가구에 놀랍게도 두 마리 물고기가 선명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구석에는 현판을 떼어 보관하였는데 그곳에는 음각으로 조각된 두 마리 물고기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역사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녀가 속했던 허 씨 집단이 어떤 이유에선가 인도를 떠나서 자리 잡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 안악현 허 씨 사당까지 ‘보주태후 허황옥의 고향’이란 푯말과 한글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순간 혼란스러웠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허황옥은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공주를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하였다고 기술돼 있다. 그러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의 김해 비문에 새겨진 ‘보주태후허씨릉(普州太后許氏陵)’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70년 쿠샨세력이 인도의 갠지스강 일대를 점령하면서 아유타국이 붕괴되면서 고향을 떠난 이주민이 이곳 보주까지 흘러들어와 정착을 하면서 후손인 허황옥 일가가 다시 김해까지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남긴 흔적인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이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각설하고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한 내게는 조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 의문은 풀렸다. 나는 관광문화 콘텐츠 제작자로 길을 떠난 것을 상기하며 사실적이고 사료적인 것들은 사학자들에게 넘기기로 하고 영원한 사랑의 길을 계속 밟기로 했다.

    허 씨 사당을 살펴보았다. 족히 300~400년은 되었을 법한 고가구에서 두 마리 물고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세워진 현판에도 김해의 김수로왕릉의 두 마리 물고기와 크기는 달랐지만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요디아부터 바라나시, 보드가야 그리고 차마고도의 기점 등충의 고도 화순향의 사찰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허황옥이 불공을 드리고 먼 길을 향했을 법한 산정에 위치한 사찰로 향했다. 산정으로 향하는 길은 작은 오솔길로, 작은 삼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고 아래로는 멀리까지 작은 구릉들이 평화롭게 펼쳐졌다. 대나무가 군데군데 선 곳에는 오랜 세월 묵은 기와를 켜켜이 이고 있는 허 씨 집성촌이 시골마을 풍경을 정감있게 그렸다. 중국의 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렇게 산세가 평화롭게 펼쳐진 곳을 보지 못했다.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산정에 오르자 가파른 바위를 깎아 만든 암자가 나타났다. 그녀가 불공을 드렸을 법한 큰 바위 아래 신령스러운 산사도 있었다. 이곳저곳 암굴이 파인 곳에서는 수도승이 금세라도 우리를 반기면서 나타날 것 같았다.

    나를 안내한 촌장 허평 씨는 나를 작은 암굴로 안내했다. 나는 비밀코드를 발견하려는 실크로드의 탐험가 스벤 헤딘처럼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는 손전등으로 암벽 이곳저곳을 비췄다. 고개를 숙이고 둘러보는 순간 두 마리 물고기가 암벽에 나란히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소리라도 지를 만큼 놀랐다.

    숲속에는 이곳저곳에 비밀의 화원처럼 숨은 보물들이 가득했다. 큰 바위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가 수풀 속에 숨겨져 있었다. 허평 씨는 이번에는 비밀의 화원 속으로 들어가듯 수풀이 우거지고 키 큰 갈대를 헤치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큰 바위 아래 신령스러운 우물터 ‘신정’이 그대로 있었다. 신령스러운 우물터 신정에 새겨진 글자들을 살펴보았다.

    우물터에서 ‘허씨녀 허황옥’ 이름을 발견했을 땐 내 지쳐 있던 살들과 맥없이 흐르던 피와 굳어 있던 등뼈까지 곧추섰다. 이곳에서도 두 마리 물고기는 보주가 기근에 허덕일 때 신정에서 매일 두 마리 물고기를 잡아 올려 살아날 수 있었다는 허황옥과 관련한 신령스런 이야기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두루 살피고 마지막 산정에 올라 앉았다. 나는 일전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뤼뷔롱 언덕에 앉아 밤을 새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이곳 보주에서 꿈과 같은 몽상과 환영에 빠져들었다. 멀리 평온한 풍경이 펼쳐졌다. 밤이면 별을 보면서 그리운 이를 향한 노래를 부르는 한 여인의 모습이 환상 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못내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산정으로 향해 가쁘게 올라오고 있었다. 꿈에선가 어젯밤 술에 취해서인가 아니면 길에서 스쳐가다 만났는지. 내가 만난 그녀는 분명 흔하지 않은 능력을 갖고 고결한 마음과 믿음으로 가득한 사랑의 감정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 어떤 부귀영화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허황옥 그녀는 결국 배를 타기로 결심을 했다. 붉은 돛을 매달고 붉은 깃발도 달았다. 그녀는 다시 기나긴 물길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의 일행은 장강의 무서운 유속을 이겨내고 밤낮으로 기나긴 험난한 영원한 사랑의 물길을 헤쳐 나갔다. 그렇게 바닷길로 접어들었다.

    배는 처음 장강의 삼협 중 제1협곡으로 깎아지르는 절벽이 펼쳐진 구당협(瞿塘峽)으로 흘러들어 갔다. 첫 협곡인 구당협에 들어서면서부터 은은하고 수려한 경관이 펼쳐지고 흐르는 강물을 따라 대자연의 조화에 처음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서 뱃고동 소리가 자주 들리고 찬란한 네온이 밤을 밝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바닷길이 열리는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의 하늘에는 처음 여행을 출발할 때 보지 못했던 별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고단한 여행을 위로하듯 달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달과 별빛은 휘황찬란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인공조명들 위에서 조용히 그들만의 절대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 김해로 향하는 마지막 바닷길이 열린 것이다.

    글·사진=남기환(사진작가·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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