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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3-11-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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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론장의 단상들을 정리해보면 공통적인 게 있다. 의견이 참 다양하다는 것과 잘 다듬으면 훌륭한 시책이 될 게 적잖다는 것이다. 최근 열린 진해부산경제자유구역, 조선해양플랜트, 마산 가포신항, 경남 미래 산업 관련 토론장에서의 감상도 모두 그렇다. 토론회가 끝나면 떠오르는 의문도 있다. 그리 좋은 안은 왜 지금까지 사장됐고, 늘 제기되는 불편한 진실은 토론회의 단골메뉴가 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면 문득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는 말이 떠오른다. 전지전능한 신은 세상사 작은 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상 주목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원문에서 파생된 비유적 표현, 바로 ‘악마는 디테일에 존재한다’다. 무심코 지나칠 경우 사태를 그르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고 운을 뗀 것도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아무리 좋은 관광자원이 있어도 바가지나 불친절 등으로 관광객들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결국 좋은 관광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 표현을 전제에 두었다.

    “왠 악마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앞의 예시를 떠올려보면 “아하!” 할지 모르겠다. 토론장에서는 분명 좋은 의견이 많이 제기된다. 그런데 실제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도식적인 공직사회의 세세한(디테일) 곳에 숨은 악마 때문이다.

    이제 주변을 돌아보자. 경남도가 미래 50년 산업 청사진을 내놓았다. 홍준표 도정이 제시한 신성장 동력 육성 자료를 보면 ‘조선해양플랜트, 지능형 기계시스템, 항공 우주, 첨단 나노융합, 기계 융합소재 등 5대 산업을 핵심 추진축으로 삼고 항(抗) 노화 산업을 가미해 미래 먹거리를 준비 중’이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18개 시군에는 특화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많은 검토와 토론을 거친 내용으로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적절히 잘 조합했다는 평가를 한다. 하지만 우려되는 게 있다. 디테일 속에 숨어 있을 악마다. 악마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 먼저 ‘기간’이다. 신들의 영역이 아니라면 인간사 50년은 꽤 오랜 기간이다. 한 세대를 40년으로 보면 세대마저 뛰어넘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산업의 시간표로 보면 장구한 세월이다. 그렇다면 경남의 산업 구도는 과연 도의 기대대로 무려 50년간 경남의 미래를 지탱하는 동력으로 남아줄 것인가? 디테일의 첫 물음이다.

    다음은 컨트롤타워의 지속성이다. 홍 지사는 지난 20일 도의회 도정질문에서 무상급식 예산 축소를 두고 야당의원과 공방하는 과정에서 “무상 급식 4개년 로드맵 이행은 전 지사에게 가서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본인의 공약사항이 아니니 전임 지사와 같은 선상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논리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포스트 홍 지사 시대에도 이런 성장축이 유효할지 의문이 든다. 그게 두 번째 디테일의 악마다.공직자들의 실무능력도 디테일의 악마가 될 수 있다. 산업의 현장에서, 토론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불만의 목소리는 공직자들의 실무능력 부재를 악마의 디테일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큰 정책은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고 해도 지원기관의 행정실무능력이 현실에 못 미친다면 공허한 시책이 될 수밖에 없다. 세세한 의견을 잘 조화시켜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면 디테일이 대세를 그르치는 왝더독(Wag the dog :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현상을 초래한다.

    악마의 디테일을 언급한 것은 전체를 흠 잡자고 하는 게 아니다. 경남의 50년을 끌고 갈 성장 동력을 미리 찾아 육성하는 것은 당연하고 옳은 결정이니 디테일한 곳에도 눈길을 주자는 얘기다. 절대 바꿀 수 없는 성장골격을 짚어낸 후 누가 컨트롤타워에 앉아도 절대 바꾸지 않는 골조로 유지하고, 골조 주변에 물 샐 틈 없는 충진재를 바르는 것이 디테일의 악마가 침범하는 것을 막는 길이다. 디테일의 악마가 경남의 장기 성장 동력을 노리지 않도록 주변을 살펴보자.

    허충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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