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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74) 김승강 시인이 찾은 창원 북면

내 젊은 날의 추억 끌어안은 채
낙동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 기사입력 : 2013-12-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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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둑에서 내려다본 낙동강변
    천마산 발치에 있는 오래된 양수장
    본포교 아래 다리로 이어진 자전거길
    명촌 앞 자전거길
    명촌 앞 수변생태공원
    강둑에서 바라본 북면


    밤이 되자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바람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절정을 치닫고 있는 은행잎을 모조리 떨어뜨릴 기세였다. 마치 무사의 가차 없는 칼날을 연상케 했다. 은행잎은 그랬다. 봄의 벚꽃이 그렇듯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러고는 겨울이 왔다. 그 칼날의 배후는 겨울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 밤 그는 시를 쓰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또 우랄산맥의 오지 바리키노 설원의 별장에서 밤새 잠 못 이루고 시를 쓰고 있는 닥터 지바고를 생각했다. 아침이 왔다. 거리에는 간밤에 몰아친 비바람으로 은행잎이 떨어져 눈처럼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빗자루를 들고 나와 눈 내린 다음 날 눈을 쓸 듯 은행잎을 쓸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 쌓인 은행잎에 새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노란 눈.

    언제부턴가 나는 ‘북면’ 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북국의 설원을 상상했다.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는 시인이 있다. 아, 북면에 시인이 없다면 북면 들판에 부는 바람은 얼마나 쓸쓸할까. 북면 들판에 내리는 눈은 얼마나 먹먹할까. 다행이다. 북면에 시인이 있어서. 우랄산맥의 오지 바리키노 설원에 시인 닥터 지바고가 있었듯이 북면에도 시인이 있다. 나도 한때 북면에 깃들어 살고 싶었다. 눈이 내려 모든 길이 지워진 겨울밤 창밖으로 눈 덮인 들판을 바라보며 시를 쓰고 싶었다.

    아직 가을이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햇살은 여전히 빛났다. 그러나 밤늦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좀 이르다 싶었지만 북면을 향해 차를 달렸다. 어차피 북면에 내리는 눈은 내 마음속의 눈이었다.

    북면으로 가려면 굴현고개를 넘어야 한다. 지금은 새 길이 나면서 터널이 뚫려 고개랄 것도 없지만 예전에는 천주산 오른쪽 끝자락의 굴현고개를 넘는 게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창원 소답동을 지나 당시 있던 경남여상 뒤에서 시작되는 고개를 넘어가는 ‘빨간버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기 일쑤였다. 그때 우리는 북면 바깥신천마을 강둑 너머의 낙동강변 모래사장으로 야유회를 가고 있었다.

    언어도 정말 태어나고 죽는 모양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공돌이’와 ‘공순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도 공돌이였다. 그때는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 때였다. 민주화 물결에서 주류를 이룬 세력은 대학생들이었다. 공돌이, 공순이란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하지 못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친구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말 속에는 자기비하 내지는 자기과시가 내포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때도 있었으니 자기비하가 공돌이나 공순이 쪽이라면,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는 했으니 자기과시는 대학생 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 만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때와 비교해 한층 성숙되었다면 그 공(功)의 무게중심을 그 어느 쪽에도 더 줄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건너왔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민주주의 발전은 경제 발전과 함께 한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말이다. 지금은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 있는 곳에 있던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등하굣길에 ‘마산자유수출지역’ 후문을 도도히 흘러 들고 나는 공돌이와 공순이들의 물결을 목격할 수 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는 공돌이가 되어 그 물결에 합류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창원공단의 한 회사에 취직해 다니고 있었는데, 북면 낙동강변은 우리 같은 공돌이 공순이들이 즐겨 찾는 야유회 코스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굴현터널을 나오자 바로 나타난 북면의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고개 이쪽의 창원 못지않은 높이의 고층 아파트들이 여기저기서 경쟁하듯이 들어서고 있었다. 산중턱을 깎아 들어서고 있는 고층 아파트단지 앞에서 나는 마치 거대한 괴물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자본이라는 괴물은 창원을 모두 잠식하고 그것도 모자라 굴현고개를 넘어 북면까지 이미 넘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뒤따라오는 괴물을 피해 달아나듯 북면의 속살을 향해 달렸다. 북면의 속살은 아무래도 마금산 아래의 온천단지일 것이다. 온천단지는 전보다 더 흥청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근에서 불고 있는 개발붐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온천단지가 전보다 더 흥청거린다 해도 온천단지 길거리 시장 좌판의 먹거리 중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북면막걸리였다. 공돌이 시절 회사에서 체육대회가 있거나 하면 누가 대표로 회사 공용차를 타고 북면으로 넘어가 양조장에서 북면막걸리를 말로 받아와서 나누어 마시고는 했다. 낙동강이 지나가고 온천수가 나는 북면은 물이 좋았고 그만큼 막걸리도 맛이 있었다.

    온천단지를 벗어나 천주로에 들어서자 더 이상 괴물은 따라붙지 못했다. 나는 조금 여유로워져서 신기마을 정자 앞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로 갈아탔다. 신기마을에서 바깥신천마을로 이어지는 천주로 주변의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깥신천마을 끝 천마산 발치에 있는 일제강점기쯤에 지어진 듯한 양수장도 낯익은 모습 그대로였다. 바깥신천마을과 강변 사이의 둑도 그대로였다. 그 둑에 올라서면 저 강 쪽으로 아득한 옛날 젊은 날의 우리들이 강변 모래사장에서 축구와 배구를 하거나 야외용 카세트를 틀어놓고 고고춤을 추며 야유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강은 옛날처럼 말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발이 푹푹 빠지던 모래사장은 간데없었다. 대신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말을 타고 계곡 아래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는 인디언처럼, 혹은 언덕에 올라 언덕 너머의 세상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몽골의 말 탄 소년처럼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강둑에서 멀리 강 쪽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달려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강변은 4대강 사업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강을 따라 달릴 수 있어 좋았다. 우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강을 거슬러 달려가자 강 저쪽에서 나와 똑같이 강을 거슬러 달려가는 이가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나란히 달리면서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젊은 날의 나 자신이든, 아니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너’이든 강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가로질러 무심히 흐르고만 있었다.

    강 상류를 따라가던 자전거길은 명촌에서 멈추어 섰다. 안내판을 보니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은 강 건너편에서 이어져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돌려 강 하류를 향해 내려갔다. 저 멀리 본포교가 희미하게 보였다. 본포교 옆 백월산 발치를 돌아가는 자전거길은 숲길처럼 은밀했다. 숲길을 나오자 본포교 아래를 가로질러 다리가 나 있고 다리를 건너자 또 생태공원이 나왔다. 본포리 쪽의 생태공원에는 지난밤 캠핑을 즐긴 캠핑객들이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아까보다 차가워져 있었다. 북면 들판 위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모였다 흩어졌다 했다.

    돌아오는 길에 온천단지 앞에 차를 세우고 페트병에 넣어 파는 북면막걸리 한 병과 두부 한 모를 샀다. 북면을 뒤로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어쩌면 오늘밤 눈이 올지도 모른다고, 일기예보는 틀릴 수도 있다고, 비바람이 분다고 했지만 그 비바람이 눈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밤이 왔다. 무사의 가차 없는 칼날 같은 비바람이 은행잎을 떨어뜨렸다. 거리에 ‘노란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북면막걸리를 마시며 눈이 내리고 있는 북면 들판을 상상했다. 북면에 사는 시인과, 우랄산맥의 오지 바리키노 설원의 별장에서 사랑하는 연인 라라와 함께 지내며 밤새 시를 쓰고 있는 닥터 지바고를 생각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홀로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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