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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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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작가의 인도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⑩ 하늘을 가르는 기차를 타고 두 마리 물고기를 찾아서

마침내 1만㎞ ‘영원한 사랑길’의 종착지 김해에 닿았다

  • 기사입력 : 2013-12-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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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공항에서 수로왕릉까지 이어지는 경전철을 타고 가면 수로왕릉역 해반천 교량에서 두 마리 물고기 조형물을 볼 수 있다.
    김해 은하사 대웅전.
    은하사 대웅전 수미단 쌍어 문양.
    은하사 대웅전 대들보에 그려진 신어.



    2000년 전 아유타국 공주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 아요디아를 출발해 미얀마, 중국을 두루 거쳐 왔다. 1만㎞가 넘는 길이지만 허황옥이 남긴 두 마리 물고기를 찾아 그 길을 따라왔다.

    인도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좌판을 깐 거리 상인들과 농담을 나누고, 빈둥거리는 여행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는 호객꾼들도 만났다.

    금세라도 덤벼들 듯한 릭샤 소리, 중국의 요란한 자동차 경적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이제 이국의 정취, 경이로운 풍경, 낯선 얼굴들 속에서 이방인으로 홀로 걷던 긴 여행이 끝나고 ‘영원한 사랑의 길(Forever romance road)’의 종착지 김해로 향했다.



    김해공항에서 수로왕릉까지 이어지는 경전철을 타기로 하고 공항 역사로 갔다. 경전철은 작은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듯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렸다. 마치 잘 가꿔진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유년시절에 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떠올릴 정도로 신기하기까지 하다. 안드로메다 행성을 향해 달리는 철이처럼 경전철 맨 앞쪽 창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니 마치 내가 ‘은하철도 999’의 조종사가 된 것 같다. 경전철이 지상 높이로 달리니, 탁 트인 시야가 상쾌하다. 앞뒤 좌우로 난 창밖 풍경을 보면서 이국의 여행자처럼 앞뒤를 오가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영원한 사랑의 길(Forever romance road)’의 마지막 도시, 김해의 경전철 안 풍경은 평화롭고 사랑스러웠다.

    누군가는 휴대폰에 고개를 숙이고 애타는 마음으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어떤 이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숨기며 이별의 문자를 주고받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공항에서 김해로 향하는 사랑의 공간, 경전철은 그렇게 각기 다른 빛깔의 사랑을 싣고서 은하수를 달리는 은하철도처럼 영원한 사랑을 향해 김해의 하늘 길을 달렸다.

    선로를 가르는 두 칸짜리 꼬마기차는 서낙동강을 끼고 있는 김해교(부제 The city of king)를 지나 김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봉황역을 지나 봉황대를 뒤로하고 수로왕릉역으로 향했다. 수로왕릉역에 내리자 발아래로 2000년 가야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품은 해반천이 펼쳐졌다. 해반천을 따라 길게 뻗은 산책로에서는 가야의 후예들이 평온한 가을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난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이 드는 사람처럼 2000년 전의 고도 가야로 빨려들어갔다.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역시 아요디아의 공주 허황옥이 남긴 흔적 두 마리 물고기였다. 해반천을 가로질러 수로왕릉으로 향하는 교각에 만들어진 두 마리 물고기 조형물은 경전철의 안전을 기원하듯 수로왕릉역을 지키고 있었다. 김해도서관이 있는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 10여 분 산책하듯 걸었다. 허황옥 동상이 있는 수릉원과 수로왕릉을 곁에 두고 있는 김해 한옥체험관에서 마지막 여장을 풀고 한숨 잠에 빠지니 스산한 가을바람이 숙소의 깊은 방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김해는 길가의 조경부터 카페 이름, 무수히 많은 스토리가 있는 역사적 가야 풍경들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곳이 없지만 그중 으뜸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흔적이 될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은하사 대웅전의 수미단에 있는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보고 그와 관련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들어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신어산에 있는 은하사를 찾아 숙소를 나섰다. 신어산(神魚山·634m)은 급격하게 가파르지도, 지루하고 길게 펼쳐진 길도 없다. 하지만 곳곳에서 기암절벽을 만날 수 있고, 그다지 험하지 않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신어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절로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48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은하사가 있다. 지금의 은하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조선 인조 때 중건한 조선 후기의 절로 수로왕과 허황옥, 그리고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비롯해 가야 건국신화가 곳곳에 배어 있다. 이번 은하사 탐방은 김해 문화관광해설사 이문수(69) 씨와 평소 가야문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도예가 이지혜(29) 씨가 함께했다.

    신어산의 숲 속 길로 올라가니 금세 맑은 가을 공기가 폐 속 깊숙이 시원하게 들어왔고, 맑은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겼다. 은하사는 사방이 여인의 치마폭처럼 주변이 붉게 물든 신어산 자락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대웅전 옆으로 난 문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인도 아유타국과 관계가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불상을 받치고 있는 수미단에서 두 마리 물고기의 흔적이라도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법당 안에는 불자들이 관세음 보살상을 향해 경배를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까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고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도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하고 수미단을 향해 다가갔다. 대웅전 안 수미단의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은 인도의 아요디아 사원에서부터 중국 등충의 서운향과 옛 보주의 땅, 안악현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멀리 아요디아부터 김해에 이르기까지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따라 여행한 이번 여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온 여정도 감격스럽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은하사 대웅전 천장의 대들보에도 오랜 세월에 빛바랜 신어(神魚)가 그려져 있었다. 수미단의 두 마리 물고기 그림과 대들보의 신어를 보고 있자니 은하사가 긴 세월 동안 신령스러운 물고기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문수 씨의 설명에 의하면 전국 고찰의 대웅전은 거의 주택과 마찬가지로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은하사의 대웅전은 서쪽을 향해 있다고 한다. 은하사의 대웅전이 서쪽을 바라보도록 지은 것은 허황옥의 고향인 아유타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장유화상의 창건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한다. 은하사는 2000년 전 수로왕과 허황옥, 그리고 장유화상의 정령이 살아 숨 쉬고 가야 초기의 역사적 흔적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대웅전을 빠져나오자 산사의 풍경이 한낮의 가을 햇살에 더욱 붉게 물들어 있었다.

    “대성 스님과 차 한잔하고 가시죠?”

    낯익은 얼굴의 스님이 우리의 발길을 잡았다. 김해 은하사 주지, 혜진 스님이 맑은 미소로 다가오셨다. 지난여름에 혜진 스님의 안내로 대성 스님과 다도 시간을 가진 적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혜진 스님의 조용한 미소가 더욱 친근하다. 스님의 안내로 40여 년 이 절의 주지였던 대성 큰스님을 다시 만났다.

    대성 스님은 지난여름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차를 우려내는 모습도 여전히 기품이 있었다. 대성 스님은 인도에서 왔다는 허황옥과 오빠 장유화상과 더불어 금강사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고, 은하사의 사찰 복원 중 대들보를 인부가 발로 밟아 개탄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장유화상이 일곱 왕자를 출가시키고 칠불로 탄생토록 해서 성불을 이뤘다는 신비스럽고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먼 곳에서 돌아온 지친 여행자를 더욱 신비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모름지기 대성 스님은 은하사의 산증인으로 허황옥과 장유화상 그리고 김해 곳곳에 묻어 있는 가야사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주지 스님이 전해주는 2000년 전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스님께서 내준 차가 식는 줄도 몰랐다. 나는 마지막 차가운 한 모금을 끝으로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동행한 이문수 씨의 가락국 이야기는 내가 붉게 물든 은하사의 가을 풍경을 찍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았다. 평소 가야사에 관심이 많은 이지혜 씨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문수 씨의 뒤를 바짝 붙어 다녔다. 은하사와 관련된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의 정령은 이문수 씨의 구수한 입담에서 다시 살아나 깊은 전설처럼 가을바람을 타고 산사를 울렸다.

    글·사진=남기환(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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