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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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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안개- 이재성

  • 기사입력 : 2013-12-0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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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안개가 짙은 날 종소리가 들린다

    관자놀이를 마구 때리는 종소리 들린다

    그런 날은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든 알아서는 안 된다

    보이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들리는 것에 홀려서도 안 된다

    안개가 안개 속으로 짙어지면서

    종소리가 요란하다

    그물이 보이지 않는데

    은빛 물고기들은 끝도 없이 밀려든다

    물고기와 선원들이 분류되지 않는다

    대만선단의 붉은 홍등도 지워진다

    종을 치던 이등항해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내 속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쉬지 않고 들린다

    종소리를 잡아 만져보니 내 손 가득

    붉은 바다가 흥건하다

    -시집 <누군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묻는다면> 중에서



    ☞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입니다.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험을 위해 젊음을 바다로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시인은 항해 중에 수십 번의 태풍과 계속되는 노역과 동료의 죽음 등을 겪었다고 합니다. 인생을 통틀어서 겪어야 할 고통을 ‘스물다섯 살’ 청년이 온몸으로 감내했던 기록입니다.

    북양의 망망대해에 가끔 짙은 안개가 끼고, 그때 누군가는 종을 치나 봅니다. 보이지 않으니 서로의 위치를 종소리로 확인시키려는 거겠지요. 마치 혼돈의 세계에 든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을 믿어서도’ ‘들리는 것에 홀려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세이렌의 노랫소리도 들릴 듯하네요. 보이지 않으니 마음 약해질 것이고 쉽게 유혹당할 것입니다. ‘종을 치던 이등항해사’는 어디로 이끌려 갔을까요?

    급기야 시인의 내면에서도 종소리가 울립니다. 불안에 겨운 시인은 ‘종소리를 잡아 만져’보네요. 그랬더니 손바닥 가득 ‘붉은 바다가 흥건’합니다. 종소리가 애써 막으려 했던 것이 바다의 살의였을까요? 생에 대한 자만이었을까요? 안개가 피워내는 고독과 불안의 분위기, 그곳에서 혼자 베일에 싸여 있는 듯한 시인은 태아의 모습을 닮은 것 같습니다. 혼돈은 늘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기 때문이겠지요.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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