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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75) 김참 시인이 찾은 삼랑진 강변

강물에 노을빛 스며들면 또 하나의 해가 차오른다

  • 기사입력 : 2013-12-1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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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동강에 비친 석양
    삼랑진 철교
    해질 무렵 강변 풍경
    강변 공터의 폐선




    바람을 쐬러 가끔 가는 삼랑진 강변, 예전에는 차 두 대가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다리를 지나 들어가곤 했다. 그 다리를 처음 지나왔던 때가 떠오른다. 너무 좁은 길이라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차가 있었지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때는 그 일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의 좁은 벼랑길을 따라가면 천천히 흐르는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은 아름다운 강이지만 삼랑진에서 보는 낙동강은 더 운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삼랑진에 와서 낙동강을 바라보곤 한다.

    몇 년 전에 김해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새 길과 제법 큰 다리가 생겼다. 그래서 예전처럼 좁은 다리를 지나 삼랑진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보다 조금 더 빨리 삼랑진에 도착했다. 오후 세 시가 조금 지났지만 해가 짧은 때라, 일몰과 석양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변에 서서 낙동강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들을 바라본다. 저 다리들이 없던 시절엔 이쪽과 저쪽의 왕래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흐르는 강물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또 강바람도 맞고 물새 소리도 들으며 천천히 강을 건너 왔을 것이다.

    차를 몰고 지나왔던 다리 아래 서서 제법 멀리 있는 철교를 바라본다. 짙은 분홍색으로 칠해진 다리이지만 해를 마주보고 바라보니 회색으로 보인다. 다리 위엔 구름이 떠 있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해가 짧은 때라 곧 어두워질 것이다. 철교를 따라 기차가 지나간다. 어린 시절 나도 기차를 타고 저 철교를 건너곤 했다. 삼천포에 사는 우리 가족이 방학을 맞아 경기도 군포에 있었던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 기차는 삼랑진역에 잠시 멈추었다가 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도 기차는 철교를 지나간다. 저 기차에 탄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언젠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와서 철교 위를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삼랑진은 밀양, 김해, 양산이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며 세 줄기 큰 강물이 부딪쳐서 물결이 일렁이는 곳이라 三浪津(삼랑진)이라 이름 붙여졌다. 뱃길이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옛날엔 수많은 배들이 이 강을 지나다니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오리 몇 마리만 나룻배처럼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절벽 길을 따라 내가 늘 강을 바라보는 곳으로 향해 가다가 잠시 차에서 내려 절벽 아래의 낙동강을 바라본다. 물줄기들이 마주치는 곳이라 강폭이 꽤 넓은 곳이 있다. 강 건너 저 멀리 산의 능선들이 겹겹이 겹쳐져 있다. 강물은 저 산들을 굽이굽이 돌아서 강변의 들판과 작은 마을들을 지나서 이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4대강 사업 때문인지 삼랑진에도 예전에는 없던 자전거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간다. 찬바람 때문인지 자전거 탄 사람들은 모두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강변으로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 본다. 폐선 몇 척이 강변에서 좀 떨어진 공터를 지키고 있다. 배는 오래되어 몹시 낡았고 주변엔 갈대와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 보니 작은 배 몇 척이 강변에 늘어서 있다. 갈대밭 한쪽엔 수달처럼 보이는 동물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순간 흠칫 놀랐다. 어쩌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괴물 쥐의 사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갈대밭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의 정체가 바람에 갈대들이 부딪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발길을 돌려 포장되지 않은 강변의 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본다. 길 양쪽으로 갈대들이 늘어서 있다. 길은 꽤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가도 가도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무렵, 나는 푸른 풀을 심어 놓은 들판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기엔 보리 같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아닌 것 같다. 저 멀리까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초록의 들판, 그 들판을 보며 나는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걸었는데, 인적은 없다. 바람 부는 소리와 새소리, 마른 풀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인지경의 고요함 덕분에 마음이 무척 편안해진다.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해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강물에 비친 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하루 중에 사물과 풍경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때는 석양 무렵이다. 해질 무렵이면 하늘은 주황색으로 물이 든다. 그리고 저녁 해의 빛은 주황색을 띠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강변은 온통 주황색을 띠기 시작한다. 하늘의 주황색을 담은 강 또한 마찬가지이고 강에 길게 비춰지며 반사되는 저녁 해 또한 그렇다. 버드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저편 강둑 위 하늘에서 저녁 해는 신비로운 광선을 뿌려대고 있다. 강에 비춰진 저녁 해도 그렇다. 두 개의 해가 반짝이는 해질녘의 풍경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본다. 참 아름답다. 넋을 놓고 석양 무렵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걷다 섰다를 반복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있는 곳의 위치에 따라서 사물의 풍경은 너무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강변에 묶여 있는 배 위에서 저무는 강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보인다. 낚시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고개를 들고 석양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을 잠시 쳐다본다. 그 사람의 눈에는 내 눈에 보이는 풍경과는 다른 풍경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갈대가 그 사람의 실루엣을 가렸다 보여주기를 반복한다. 저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 늦은 시간에 왜 저 바위에서 하염없이 강변을 바라보고 있을까? 저녁 해가 남아 있을 시간이 이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세 물줄기가 만나는 곳의 풍경을 담으려고 나는 걸음을 재촉한다.

    절벽 옆에 차를 세워두고 나는 일몰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정말 오묘하다. 강물엔 여러 개의 저녁 해가 비치고 있다. 일렁이는 물결의 신비로운 색깔이 내 눈동자에 각인된다. 나는 강 저편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에 눈길을 고정시킨다. 강변에 홀로 서 있는 저 나무는 저녁의 아름다운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강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물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의 햇살을 온몸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저 나무, 몸을 움직이지 않고 땅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 그 나무가 있는 강변의 풍경은 참 아름답다. 저녁 해의 빛이 강물을 따라 길게 뻗어 나온다. 석양 무렵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들, 아득히 멀리 있는 저 산의 능선 아래엔 나와 같이 넋 놓고 저녁 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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