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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42) 밀양 영남루

밀양강에 드리워진 ‘쌍둥이 동양화’

  • 기사입력 : 2013-12-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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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강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영남루가 밀양강에 드리워져 있다. 영남루에 올라서면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영남루 아래의 대나무 숲에는 아랑 낭자를 기리는 아랑사가 있다./김승권 기자/



    서부경남 사람들에게 가장 운치 있는 대표적 누각을 물어보면 제일 먼저 촉석루를 떠올린다. 하지만 밀양, 김해 등 중부 경남에서는 영남루를 최고의 누각으로 꼽는다.

    교통이 불편해 지역 간 왕래가 많지 않던 시절,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는 경남의 동·서부 지역민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옛 건축물이자 상징적인 장소였다. 서부경남에서 자란 기자가 촉석루에 비견되는 영남루를 처음 접한 것은 소설가 이문열의 책에서였다.

    이문열의 글에는 영남루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밀양을 얘기하면서 아무래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강을 가운데 끼고는 그 솔밭과 엇비슷이 맞보고 있는 영남루와 대숲이다. 영남루는 밀양을 찾는 이에게는 그 어떤 버스 정류소나 기차역보다 먼저 나타나는 마중꾼이고 떠나는 이에게는 또한 그 마지막 배웅자였다.” (이문열 ‘아름다움의 이데아’ 중에서)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소설가 이문열에게 영남루는 젊은 시절의 고독과 방황을 위로해 준 곳이다. 이문열에게 밀양은, 그리고 그 상징인 영남루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놀이터’였다”고 그의 밀양 문학기행에서 적었다.

    밀양의 자랑 영남루는 고려말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밀양도호부 객사로 타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이달 초 밀양을 방문했을 때 밀양강변 절벽 위에 자리한 영남루는 웅대한 모습을 자랑하며 이방인을 맞이했다. 영남루는 낮에 보는 것도 좋지만 불빛과 함께 밀양강에 비친 영남루 야경은 일품이다. 해서 전국의 유명한 사진가들은 영남루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 해마다 밀양을 찾는다.

    밀양강 둔치를 걸으며 강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예쁜 누각과 읍성, 절벽 아래 대숲을 정교하게 묘사한 동양화가 밀양강 물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영남루란 이름은 신라 경덕왕(742) 때 건립된 절 영남사(嶺南寺)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절이 있던 자리에 고려 공민왕 14년(1365년) 밀양부사 김주가 신축해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불렀습니다.”

    문화해설사 박정희 씨는 영남루의 유래를 이렇게 소개했다. 영남루는 다른 옛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반복했다.

    조선 세조 6년(1460년)에 밀양부사 강숙경이 규모를 확대했고 중종 37년(1542년) 밀양부사 박세후가 중건했으나 선조 15년(1582년) 대루와 부속 당우가 불타버렸다. 이어 인조 15년(1637년) 밀양부사 심흥이 다시 중건했다. 헌종 8년(1842년)에 실화로 소실한 것을 2년 뒤인 1844년에 부사 이인재가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영남루는 정면이 5칸, 측면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넓게 잡고 높은 기둥을 사용해 규모가 웅장한 2층 목조건물이다. 좌우로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이어져 있다. 본 누각에서 손님들이 머무는 침류각으로는 달월(月)자형의 계단형 통로로 연결돼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맞지 않고 건너갈 수 있다.

    박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누각 위로 올라섰다. 앞마당에서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는 쪽이 정면이 아니고, 밀양강 건너 삼문동을 비롯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밀양읍성과 인접한 쪽이 누각의 앞쪽이라고 설명했다.

    영남루에는 여러 현판이 걸려 있다. 먼저 마당 쪽으로 ‘영남루’와 좌우로 ‘교남명루(嶠南名樓)’와 ‘강좌웅부’(江左雄府)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영남루’(嶺南樓)란 현판은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이 쓴 것이고, ‘교남명루’와 ‘강좌웅부’란 글씨는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이 쓴 것이라고 한다.

    ‘교남명루’는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이란 뜻인데, 교남지방이란 경상남북도를 통틀어 말한다. 그리고 ‘강좌웅부’는 낙동강 왼쪽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이다.

    누각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 현판이 많이 걸려 있다.

    그 가운데는 당시 이인재 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 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이 눈길을 끈다. 5월 밀양아리랑 대축제가 열릴 때 이곳에서는 아랑규수 선발대회도 열린다.

    누각 천장에 모두 11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는데, 용은 용포나 용좌 등에 사용될 때 최고권력자를 의미하기도 하며 누각에서는 사방의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박 해설사는 “지금은 겨울이라 찾는 사람이 좀 뜸하지만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시민들로 늘 빼곡하다”고 말했다.

    누각 마루에서 시원한 밀양강을 바라보는데 더없이 좋았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오랜 세월 탓에 단청이 많이 벗겨지고 빛이 바랬다는 점이었다.

    이어 앞마당 뒤편 누각과 마주보며 위치한 천진궁을 둘러보았다. 내부에는 단군 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중앙 맨 윗자리에는 단군의 영정,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 시조들의 위패가 있다. 여기서 매년 음력 3월 15일에는 어천대제(御天大祭),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대제(開天大祭)를 봉행한다.

    앞마당에는 국화꽃 장비 또는 모란을 닮은 돌꽃 석화(石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 해설사는 “개인적으로 석화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남루 주변에는 이 외에도 아랑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아랑사당, 530년을 이어온 밀양읍성, 옛 영남사의 부속 암자였던 천년 고찰 무봉사, 박시춘 선생 생가 등 볼거리가 많다.

    현재의 아랑 영정은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아랑사당에 영정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당 김은호 화백의 솜씨를 빌려 제작한 것을 1963년 10월 9일 직접 밀양을 방문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이상규 기자 sklee@knnews.co.kr


    ◆밀양시, 국보 환원 추진

    영남루는 다른 많은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 소실됐다 중건을 반복한 건물이다. 현재의 영남루는 1844년에 중건한 것으로 200년이 채 안 된 건물이지만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히고 있다.

    영남루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누정(樓亭) 건축으로 서울의 숭례문과 함께 1933년 보물, 1948년 국보로 지정됐으나 1962년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물 제147호로 바뀌었다.

    밀양시는 이에 영남루 국보환원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국보 승격을 위해 최근 6000여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부산대학교에 학술조사 용역을 의뢰했다. 또 시민사회와 함께 ‘영남루 국보환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시민운동으로 전개해 나간다고 한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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